서울 강남에 위치한 신한은행 지점의 A부지점장은 요즘 모텔에서 하루를 보낸다. 그는 모텔 입구에서 투숙객을 센다. 모텔에 대출해주기 전에 현금흐름을 파악하기 위한 것이다. 예전에는 저축은행 같은 2금융권에서 하던 일이지만 지금은 은행에서도 똑같은 일을 하고 있다.
은행들이 유흥ㆍ향락업과 투기목적의 부동산업에까지 무차별적으로 대출에 나서는 것은 돈벌이 때문이다. 대기업은 돈을 빌려 쓰지 않고 가계대출 시장은 포화상태여서 예전에는 손대지 않던 곳도 일일이 찾아다니는 것이다.
이처럼 수익에 눈이 멀어 은행들이 마구잡이로 대출을 해주는 동안 금융생태계는 무너지고 은행의 자금중개 기능은 왜곡되고 있다.
◇수익 주는데다 예외대출 가능=은행들의 저인망식 영업은 낮아진 수익성이 주요 원인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1월부터 9월까지 은행들의 누적순익은 4조4,0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58.9% 수준이다. 총자산순이익률(ROA)과 자기자본순이익률(ROE)도 각각 0.39%, 4.69%에 불과한 실정이다.
한 시중은행 여신담당 부행장은 "은행 입장에서는 저축은행과 거래하는 곳들 중 신용도가 좋은 곳들은 항상 눈여겨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당국이 사실상 불건전업체에 대한 대출을 늘리지 말라고 권고했다는 데 있다. 2011년 7월 금감원과 전국은행연합회는 '기업여신관행 개선을 위한 세미나'를 개최하고 은행별 특성에 따라 불건전오락기구제조업과 도박장운영업 같은 미풍양속을 해치는 업종을 선정해 여신취급 기준을 강화하기로 했다.
이후 국민은행과 기업은행ㆍ대구은행 등이 불건전업종 등에 대해 내규로 취급을 금지(제한)하기로 했다. 한국씨티와 SC은행의 경우 최고리스크책임자(CRO)의 사전승인을 통해서만 불건전업종을 취급할 수 있도록 했다. 우리은행과 신한ㆍ하나ㆍ외환 등 12곳은 여신위원회의 승인을 받을 때만 예외적으로 불건전업종을 취급할 수 있도록 해 대출을 억제했다.
하지만 예외적인 경우만 취급할 수 있도록 해준 것이 되레 합법적인 대출 길을 열어준 꼴이 됐다. 뒤집어보면 여신위원회의 승인만 받으면 얼마든지 대출을 할 수 있는 탓이다.
금융업계의 한 관계자는 "불건전업종에 대해 명목상 여신위원회 승인을 받게 해놓았지만 이는 허울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은행 '갑질'에 금융생태계 파괴=은행이 불건전업종까지 대출을 하게 되면 이들 업체과 거래해오던 저축은행이나 캐피털사 같은 2금융권 회사들은 주요 수익원을 잃게 된다. 리스나 팩토링 같은 전문 분야를 갖고 있는 캐피털사와 달리 저축은행이 입는 타격은 매우 크다. 한 저축은행 대표는 "올 들어서만 시중은행에서 거래처 기업대출을 수십억원어치나 가져갔다"며 "금융당국이 동일인 대출한도를 줄인 틈새를 은행들이 파고들어온다"고 토로했다.
돈을 빌려 쓰는 업체들 입장에서도 금리가 낮아지고 대출한도가 높아진다는 면에서 은행의 불건전대출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과거에는 은행들이 불건전업종에 대출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여신금지업종제도가 있었지만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이 제도는 폐지됐다. 저축은행업계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에 뛰어들었다가 대규모 영업정지 사태를 맞게 된 이유의 하나로도 여신금지업종제도 폐지가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