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건설사에서 근무하는 이재한(가명)씨는 다음달 분양을 앞둔 위례신도시의 분양사무소장을 맡고 있다. 이씨는 하루에도 2~3차례씩 사무소를 찾아오는 시중은행 대출영업 직원들을 맞는 일이 일상이 됐다. 불과 올해 초까지 만해도 이씨를 찾아오기는커녕 만나주지조차 않았던 시중은행 직원들이 이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이씨를 찾아온다. 이씨는 "시중은행 영업 행태를 보면 분양시장이 살아나고 있음을 피부로 체감하고 있다"며 "시중은행들의 집단대출 경쟁이 치열할수록 건설사는 저렴한 금리로 고객을 유치할 수 있어 이득"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8·28전월세대책' 발표 이후 아파트 분양시장에 수요자가 몰리면서 금융계 역시 발걸음이 바빠졌다. 부동산 경기 침체기에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었던 로비전이 재현되고 있다. 시중은행들의 집단대출 금리인하 경쟁도 가열되며 이미 총성 없는 금리전쟁이 진행 중이다.
올해 6월 주택 취득세 종료를 앞두고 주택담보대출 특판 금리를 적용해주던 시중은행들은 또다시 특판 금리 카드를 꺼내 들고 있다. 저금리 기조로 신규 자산운용처 발굴이 마땅찮아 상대적으로 리스크가 낮은 주택담보대출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 역시 맞물려 있다. 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자산건전성 악화와 시장금리 왜곡이라는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금리 쏠림현상 심화…거부할 수 없는 특판의 유혹=주택담보대출은 기업금융과 달리 시중은행마다 차별화할 수 있는 서비스가 제한적이다. 사실상 금리가 경쟁력을 결정해주는 대부분의 요인이다. 이 때문에 시중은행들은 끊임없이 금리인하에 대한 유혹을 느낀다.
지난 27일부터 85㎡형 이하 주택의 담보대출에 대해 0.2% 우대금리를 적용하고 있는 농협은행 역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농협은행은 올해 5~6월 두 달 동안 한시적으로 주택담보대출 금리 특판행사를 실시했다. 기존보다 금리를 30~40bp 낮춰 평균금리 3.6~3.65%에 주택담보대출을 취급했던 것. 농협은행의 한 관계자는 "수익성을 고려해 특판행사를 종료했지만 곧바로 신규 취급고객 숫자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며 "저렴한 금리를 찾는 쏠림 현상이 심해 특판을 재개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실제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은 금리에 따라 자산규모가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어드는 쏠림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올해 6월부터 주택담보대출 업계 최저금리(3.46~3.83%)를 내놓고 있는 국민은행은 5월 말 74조7,621억원이던 잔액이 7월 말 77조6,034억원으로 늘어났다. 반면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신한(3.70~4.23%)과 우리(3.88~4.10%) 은행은 같은 기간 주택담보대출 잔액이 각각 2,642억원과 1,603억원 감소했다.
부동산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면서 그동안 특판 행렬에 동참하지 않았던 시중은행들도 금리경쟁을 예고하고 있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앉아서 계속 고객을 뺏기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않겠느냐"며 "현장에서 상담사들이 금리 때문에 고객 확보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어 (주택담보대출) 금리인하를 고려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시장왜곡 부추기는 금리경쟁=이미 금리경쟁이 치열한 집단대출시장에서는 역마진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7월 말 시중은행의 집단대출 평균금리는 4.05%를 기록했다. 하지만 9월 현재 수도권 유망 사업장의 집단대출 최저금리는 3.4%대 수준, 지방은 3.5~3.6%까지 떨어진 상황이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경쟁 은행에서 모 분양사업장 건설사에 제출한 제안서 금리를 보고 입이 떡 벌어졌다"며 "마진은커녕 인건비도 절반밖에 건질 수 없는 수준의 금리를 써냈다"고 말했다.
주택담보대출을 둘러싼 시중은행의 경쟁은 금리의 '이중구조'를 만들어내고 있다. 은행연합회에 공시하는 금리와 실제 적용하는 금리에 차이가 발생하고 있다는 얘기다. 금융계의 한 관계자는 "영업점마다 본부장 특인제도를 통해 우대금리를 적용해주는 대출 건수가 최대 70~80% 정도에 달한다"며 "이 때문에 공시금리와 실질금리가 적게는 2~3bp에서 많게는 30~40bp 차이를 보이고 있다"고 털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