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 상생 외면하는 슈퍼 甲 미국


최근 미사일지침과 원자력협정 개정을 둘러싼 한미 양국 간의 협상을 보노라면 미국은 상생∙공생을 외면하는 슈퍼 갑(甲) 대기업 같다. 핵무기 등 대량살상무기 비확산이라는 정치외교∙군사적 명분을 내걸었지만 자국 무기∙원자력 산업계의 이해를 충실하게 대변할 뿐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게리 세이모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량살상무기(WMD) 조정관은 최근 워싱턴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핵연료의 안정적 공급을 위해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한국의 주장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분명히 했다. 농축 우라늄의 경우 미국∙프랑스 등에서 사다 쓰면 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세계 5대 원전 강국이지만 우라늄 농축을 하지 못해 매년 우라늄 정광(精鑛)을 사들여 해외에 농축을 위탁하는 데 9,000억원을 쓰고 있다.


미국의 한국 차별은 불공정행위

반면 2차 대전 때 미국과 총부리를 겨눈 전범(戰犯) 국가 일본은 지난 1970년대부터 미국의 양해하에 우라늄 농축과 재처리를 시작했다. 그 결과 일본은 세계 3대 원전 대국이 됐고 지난해 말 기준으로 농축 우라늄은 1,200~1,400㎏, 플루토늄은 30톤가량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핵무기 6,000기 이상을 만들 수 있는 분량이다.


중국∙일본은 물론 북한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전용할 수 있는 로켓 능력을 갖춘 뒤에도 사거리를 더 늘리기 위해 경쟁하고 있는데 우리가 개발할 수 있는 탄도미사일은 한미 미사일 지침에 따라 사거리 300㎞, 탄두 중량 500㎏으로 제한돼 있다. 북한은 우리와의 무력 분쟁에 대비해 남한 전체와 일본의 대부분 지역까지 공격할 수 있는 로동 미사일을 실전배치했는데 북한 영토의 절반 이상은 우리 탄도미사일의 공격권에서 벗어나 있다. 북한은 더구나 핵무기까지 보유하고 있다.

관련기사



일본과 이스라엘은 탄도미사일에 적용되는 고체추진 로켓을 이용해 자력으로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했지만 우리는 고체 로켓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데도 해외 액체추진 로켓을 도입해 우주발사체를 쏘아 올려야 하는 처지다. 고체 로켓으로 우주발사체를 제작하려면 한미 간에 양해된 미사일용 로켓보다 사거리(300㎞)와 추력(推力∙초당 100만파운드)을 훨씬 높여야 하는데 이는 한미 미사일 지침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선진국들은 필요에 따라 고체∙액체 로켓을 선택할 수 있는데 우리는 그런 권리를 박탈당한 셈이다.

우리 입장에서 미국의 이 같은 차별은 우월적 지위 남용이자 명백한 불공정 행위다. 문제는 우리가 독자적인 우라늄 농축이나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를 선언할 형편이 못 된다는 사실이다. 미국이 프랑스∙영국 등과 힘을 합쳐 한국에 대한 농축 우라늄 공급을 중단하면 대규모 정전 사태가 불가피해지고 수출은 물론 국가 경제가 파탄이 날 수밖에 없다. 이들 국가 역시 우리가 핵무기 개발로 전용될 수 있는 농축∙재처리 기술을 갖는 것을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비확산이라는 명분을 내걸지만 자국 산업 보호 목적이 크다.

비핵화 재다짐 등 적극 설득해야

하지만 에너지 안보 차원뿐 아니라 경제적 측면에서도 미국으로부터 농축 권리를 꼭 얻어내야 한다. 한미 원자력협정에 의해 금지돼 있는 우라늄 농축 권리를 얻어내려면 정부와 학계∙업계 등이 힘을 합쳐야 한다. 미국이 우리를 신뢰할 수 있도록 대통령이 직접 협상에 나서고, 비핵화 다짐을 하고, 농축시설 곳곳에 국제원자력기구(IAEA) 감시카메라를 설치해도 좋다고 제안하는 식으로 농축 권리를 확보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우리가 개발∙배치할 수 있는 탄도미사일의 사거리를 1,000㎞ 수준으로, 탄두 중량을 1톤 수준으로 늘리는 문제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는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는다고 국제사회에 천명했기 때문에 파괴 범위가 핵탄두보다 매우 제한적인 재래식 탄두의 파괴력을 높일 필요가 있다는 점을 적극 설득해야 할 것이다. jaelim@sed.co.kr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