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7월24일] 시몬 볼리바르

베네수엘라ㆍ콜롬비아ㆍ에콰도르ㆍ페루ㆍ볼리비아. ‘시몬 볼리바르(Simon Bolivar)’라는 국부(國父)를 지닌 나라들이다. 1783년 7월24일 카라카스(베네수엘라 지역)에서 태어난 볼리바르는 47살 평생을 독립운동에 바친 인물. 남미공동체의 꺼지지 않는 등불이다. 부모에게 거대한 금광과 농장을 물려받았지만 식민지 착취에 저항해 23살이던 1806년부터 독립운동에 나선 볼리바르의 생애는 고난의 연속. 1811년 베네수엘라를 해방시켰지만 바로 스페인에게 빼앗기는 등 4번의 망명길에 올랐다. 독립전쟁의 승세를 굳힌 결정적인 계기는 1819년 안데스 산맥 돌파. 험준한 안데스를 넘은 볼리바르의 애국군은 누에바 그라나라에 독립을 안겼다. 볼리바르는 이곳에 콜롬비아라는 이름을 붙였다. 1821년 베에수엘라, 1822년에는 키토(에콰도르)를 해방시킨 그는 해방지역을 콜롬비아 연방공화국으로 묶었다. 1823년에는 페루도 해방시켰다. 1825년 해방된 페루 남부 주민들은 나라 이름을 볼리비아로 정했다. 왕위에 오르라는 제의도 마다했던 대콜롬비아 공화국 대통령 볼리바르에게 돌아온 것은 배반. 강력한 남미를 피하고 싶었던 미국과 영국, 기득권 유지를 위해 지역주의를 원했던 대지주 탓이다. 볼리바르는 연방의 존속이 위협받자 1830년 대통령직을 포기하고 야인으로 돌아간 직후 생을 마감했다. 미완성인 볼리바르의 꿈은 진행형이다. 베네수엘라는 1998년 국명을 베네수엘라 볼리바르로 바꾸고 남미통합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세계화에 반대하는 남미국가들의 움직임은 ‘볼리비아 대안’으로 불린다. 아무리 삐걱거려도 남미통합 논의는 생명력을 잃지 않을 전망이다. 볼리바르가 ‘해방자(the Liberator)’로 추앙받는 한.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