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국회 저축은행 사태 국정조사가 파행을 거듭하고 있다. 핑계 없는 무덤이 어디 있으랴마는 '그럼 그렇지'라는 국민의 자탄이 귀에 선하다. 특히 어느 여고생의 슬픔이 나를 더욱 무력감에 빠지게 한다. 홍미자씨. 배달 주문을 주로 받는 작은 중국음식점을 하면서 식당에서 먹고 잤다. 딸은 식당에 붙어 있는 다락방에서 공부했다. 흔한 학원 하나 제대로 다니지 않고 외고에 진학했다. 장차 외무고시에 합격해서 대한민국을 알리는 외교관이 꿈이라 한다. 매달 50만원씩 부산저축은행에 정기적금을 붓던 어느 날 홍미자씨는 은행으로부터 더 좋은 조건으로 계약을 변경하라는 제안을 받았다. 내용은 잘 몰랐지만 이자 많이 준다니 이를 마다할 사람이 누가 있나. 지급정지 난리가 나자 그때서야 후순위채권으로 계약이 변경된 것을 알았다. 인생의 보람이자 의미였던 딸, 그 딸의 대학 공부 밑천 4,000만여원이 한순간에 날아갔다. 홍씨가 보여준 통장의 금융실명 확인란에는 다른 종이에 찍혀 있던 도장이 오려 붙여져 있었다. 국회 정무위원회 회의에서 3차례나 이 사연을 소개했다. 이것은 금융실명제 위반이 아니냐, 법 위반이면 원인 행위가 위법이니 후순위채권으로의 계약변경 자체가 무효 아니냐고 따졌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만약 사실관계가 그러하다면 구제 방법이 있을 것이라며 철저한 조사를 약속했다. 그게 지난 5월27일이었다. 그러나 홍미자씨는 지금도 돈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 피해자들이 점거 농성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원의 퇴거명령이 떨어졌건만 농성 해산은 언제 끝날지 모른 채 금융감독원은 금융자료에 접근조차 못하고 있다. 정말 나라 꼴이 말이 아니다. 동료인 국정조사위원들에게 죄송한 얘기지만 국정조사 무용론은 어찌 보면 국회의 자업자득이다. 이렇게 되면 결국 특별검사제로 가서 끝장을 봐야 할 것 같다. 어찌 됐건 홍미자씨의 이 기막힌 호소를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나같이 못난 어미 뱃속으로 나온 잘난 딸에게 너무 미안해요. 어미로서 새끼를 지키지 못해 미안해요. 딸은 그 돈 못 찾으면 이 나라를 떠날 거랍니다. 정말 착하고 잘난 우리 딸이 꿈을 잃지 않게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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