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동양화학/서울의 개성상인 “우리에게 불황은 없다”(재벌)

◎거래처 지원 억척·아낌없이… 사원복지 최선 “쟁의 0”/“21C 세계적 화학사 도약” 창의·책임경영 총력인천직할시 학익동에 자리하고 있는 동양화학 공장을 방문하면 파이프가 이러지리 얽혀있는 대형 화학플랜트 옆으로 회색빛 산무덤이 유난히 눈길을 끈다. 화학공정의 주원료로 쓰이는 소금을 야적해 놓은 것이다. 이 회사는 국내최대, 세계3위의 소다회 생산업체다. 소다회에는 소금이 주원료다. 소다회 1톤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굵은 됫박 소금 1.5톤이 필요하다. 동양의 소다회 생산량이 연간 40만톤인 점을 감안하면 동양의 연간 소금 소비량은 무려 60만톤이나 된다. 이는 단일 소비로는 국내 최대다. 이렇게 소금을 많이 쓰는 과정에서 동양화학의 트래이드마크는 「왕소금」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소금이 동양의 상징으로 자리잡은 진짜 이유는 이처럼 소금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인천에서 동양화학에 대한 지역주민들의 반응은 『그 짠 기업, 소금도 그냥 쓰는 것이 아니라 볶아서 쓰는 회사』다. ○공장직원에 아파트 동양화학이 이처럼 짜기로 소문난 것은 근검절약과 신용을 목숨처럼 여기는 개성상인의 후예인 이회림 창업주(명예회장)의 경영철학에서 비롯된다. 그는 언제나 사원들에게 저축과 근검을 강조했다. 상여금을 장기저축 통장으로 지급했던 이명예회장의 일화는 아직도 동양에서는 전설처럼 이어지고 있다. 한평생을 이면지만 사용할 정도로 지독한 절약가인 이명예회장은 동양화학의 사업이 번창하던 지난 70년대 상여금을 직접 지급하지 않고 장기저축 통장을 만들어 지급했다. 『돈을 갖고 있으면 쓰기 마련이니 통장에 넣어두라』는 배려(?)에서다. 이러다 보니 동양화학맨들의 생활에는 절약정신이 배어있다. 이들의 책상에서랍에는 매우 간소하다. 볼펜은 검은색과 붉은색 단 두자루 뿐이고 풀이나 칼, 지우개 같은 것은 부서에 한 두 개씩만 있다. 어쩌다 볼펜 같은 문구류가 생겨도 회사에 반납하고 쓰던 것이 떨어지면 그 때 받아서 쓴다. 사무용품은 닳아서 없어질 때까지 사용한다. 동양의 이런 근검절약 정신은 최근 극심한 불황기를 맞은 후에야 「비용줄이기」 「생산성 높이기」 등과 같은 운동으로 호들갑을 떨고 있는 대다수의 기업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렇다고 동양화학의 「왕소금」은 무작정 짜기만한게 아니다. 평소 생활에는 지독한 절약가이지만 사업과 관련해서는 아낌없이 쓸줄도 안다. 동양의 사원복지는 국내 기업 가운데 상위급에 속한다. 이 회사는 지난 60년대 이미 사원아파트를 건설, 공장에 근무하는 전사원들에게 아파트가 지급되고 있고, 직원들간의 회식모임이나 영업사원들의 활동비도 적지 않다는 것이 이들의 얘기다. 그 결과 동양화학은 창업이래 아직 한 번도 노사쟁의를 겪지 않았다. 또한 동양화학맨들은 성실하고 업무에 있어서는 프로근성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거래처 관리에 관해서는 동양화학 영업사원을 따를 사람이 없을 정도로 억척스럽다는 것이 주변의 평가다. ○올 매출 1조2,000억 동양의 신입사원들이 입사한 후 처음 받는 교육은 「개성상인 정신」이다. 개성상인들은 신용과 근검절약을 중시하고 업무에 있어서는 철저함과 근성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동양은 세계 화학시장에서는 후발주자였지만 프랑스 롱프랑사와 같은 유명기업과는 대등한 대우를 받았고 합작이나 기술지원 등과 같은 거래도 활발한 편이다. 이런 이면에는 이들과의 거래에서 쌓은 신용이 큰 몫을 해내고 있다는 것이 동양화학 관계자의 말이다. 또 동양화학맨들은 대리점과의 거래에 있어서도 제품창고와 같은 기초설비를 무료로 설치해주거나 주기적인 진단과 서비스 등을 통해 아낌없이 지원하고 납기와 같은 신용은 철저히 지킨다. 동양의 기업문화를 대표하는 또 한가지는 보수성이다. 동양화학 서울 본사와 각 계열사 사무실, 공장벽면에는 어김없이 걸려있는 사시는 「서두르지 말되 쉬지말라」다. 21세기를 앞두고 대다수의 기업들의 사시나 사훈이 유연하고도 스피드가 있으며 첨단 냄새가 물씬나는 것으로 바꾸고 있는 것과 달리 동양의 사시는 아직도 고전적 형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 59년 설립된 동양화학은 국내 화학산업의 선두주자지만 올해 그룹매출목표는 1조2천억원 이다. 계열사는 21개에 달하지만 지난해말 처음 참여한 인천민방을 제외하면 모두가 화학관련 업체다. 그만큼 다각화를 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정경유착 절대 안해 이에대해 유병용 상무는 『동양의 보수성은 창업주의 경영철학에 기인하는 것도 있지만 대형 투자를 필요로 하는 화학산업의 특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장치산업인 화학은 한 번에 대단위 투자가 소요되고 기술적 어려움도 따르기 때문에 의사결정에는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동양은 그동안 화학분야의 수직계열화에 주력, 외길을 걸으며 무리한 사업확장이 없었고 특히 정경유착을 통한 부실기업의 인수 등과 같은 확장전략은 한 번도 쓰지 않았다. 또 외국기술을 그대로 들여오는 것이 아니라 기초기술만 도입한 후 나머지를 자체개발해 동양화학의 기술로 만들어 썼다. 그 결과 동양의 21개 계열사는 모두가 해당분야에서는 세계적인 입지를 확보하거나 독점적인 지위를 구축하는 전문업체로 자리했다. 표백제인 퍼카보나이트 생산규모는 단일공장으로 세계최대며, 카리제품의 생산규모 역시 세계 1위다. 소다회는 세계 3위. 지난해에는 21개 계열사 모두 흑자를 냈다. 그러나 동양화학의 이런 보수적인 기업문화는 오늘의 알찬 그룹을 키워내는 원동력이 됐지만 시장과 산업이 전면 재편되고 있는 21세기 경영환경에서 새로운 발전을 도모하는 데는 오히려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평가다. 유연하면서도 스피드가 요구되는 새로운 변화의 시대에는 순발력이 뒤진 자본재 사업문화가 약점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화학 외길을 걸으며 굳어진 동양의 「화학」이미지는 문화, 전자, 소프트웨어 등과 같은 신세대형 사업추진을 어렵게 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팀장권한 대폭 강화 그러나 동양화학은 이같은 자신의 약점을 스스로 정확하게 진단하고 있다. 지난해 새로 취임한 이회장은 동양화학의 21세기 비전으로 「소비자와 친숙한 사업」을 꼽았고 이를 위해 그동안 그룹전반에 묻어있는 보수성의 잔재를 털어내기 위해 팔을 걷어부칠 것을 선언했다. 동양화학은 최근 「파이오니어 21」이란 그룹차원의 경영혁신 운동을 통해 그룹 임직원들의 의식개혁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특히 PM(Product Manager·제품관리자)제도를 도입해 모든 의사결정권을 차·부장급의 팀장에게 대폭 위양하는 대신 성적이 나쁜 사업부는 가차없이 폐지해 버리는 책임경영체제를 도입, 사원들에게 책임감과 창의성을 심어가고 있다. 결제는 물론 사내 의사소통까지 가능케하는 그룹 차원의 PC통신망도 구축하고 있다. 여기에는 컴퓨터 매니아인 이수영회장의 의지도 한 몫을 하고 있다. 이회장은 회장실에서 사내통신망을 통해 영어로 결재도 하고 지시사항도 영문으로 직접 내리고 있다. 이를 통해 정보통신 시대에 맞는 유연하고도 스피드있는 기업문화를 만들어가겠다는 것이 동양화학의 21세기 맞이다.<민병호> ◎상징정신/1전을 위해 100리 가고 술 1,000원어치 사주더라도 물건값은 10원도 양보않는 철저한 신용과 근검절약 동양화학의 창업주 이회림 명예회장은 국내에 남아있는 몇 안되는 개성상인이다. 그의 경영철학은 신용과 근검절약을 신조로 하는 개성상인의 정신을 이어받고 있으며, 이는 다시 동양화학의 기업문화로 녹아들고 있다. 동양의 기업문화는 개성상인의 정신이 진하게 배어있다. 개성상인은 「1전을 위해 백리를 간다」(박리다매) 「술은 1천원어치 사줄 수 있어도 물건값은 10원 어치도 양보할 수 없다」는 것을 철저히 신봉한다. 그리고 근검절약과 신용을 목숨보다 중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명예회장은 사업을 하면서 돈을 떼이는 것을 지독히 싫어했다. 『장사는 상대를 가장 잘 알아야되고 돈을 떼인 것은 상대를 잘 못 알았기 때문이다』며 사원들을 독려했다. 이는 돈이 중요해서가 아니라 장사꾼의 명예에 관한 문제라는 것이다. 이런 이유인지 동양화학에서는 거래선 관리에 관한한 누구보다 철저하다. 돈을 떼이지 않기 위해서는 거래선을 잘 관리해야 하고 그만큼 신용을 쌓아야 한다. 동양화학의 지난해 매출액 4천7백억원 가운데 떼인돈(대손금)이 10억원도 채 되지 않았다는 것은 이를 잘 보여준다. 개성상인은 신용을 중시한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거래에서 신용을 쌓지 않으면 결코 상대하지 않는다. 신용중시 정신은 동양의 보수적 경영을 이끌었고, 수평계열화 보다는 화학중심의 수직계열화에 주력케한 원동력이 됐다. 개성상인의 후계자 육성방식은 매우 독특하다. 계성상인은 자식을 후계자로 물려줄 때에는 반드시 다른 상점(회사)에 취직을 시켜 철저한 사업공부를 시킨 후 자신의 상점을 물려준다. 이명예회장의 뒤를 이은 이수영 회장도 미국에서 공부를 마친 후 친구가 하는 영풍상사에 취직해 3년을 근무한 뒤 동양화학에 입사, 20여년간 경영수업을 받았다. 이런 정신은 지난 37년여 동안 단 한 번의 흔들림이 없었고 극심한 불황기를 맞는 최근에도 21개 계열사가 모두 흑자를 내는 건실한 오늘의 동양화학을 키워낸 원동력이자 상징으로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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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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