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격적인 기준금리 인하 등 각종 물가대책이 잇달아 불발되면서 유로존(유로화 사용 18개국)이 '디플레이션 공포'에 휩싸이고 있다.
9일(이하 현지시간) 올해 첫 통화정책회의를 앞둔 유럽중앙은행(ECB)의 고민도 이에 따라 더욱 깊어지고 있다.
7일 유럽연합(EU) 통계기관인 유럽통계청(유로스타트)은 유로존의 지난해 12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해 12월보다 0.8% 증가하는 데 그쳤다고 밝혔다.
이는 전월의 0.9%보다 더 떨어진 것으로 시장 예상치인 0.9%보다도 낮았다. 변동성이 강한 식품 및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CPI는 0.7% 상승에 그치며 유로화 출범 이후 최저치로 급락했다.
특히 지난해 11월 ECB가 물가상승을 목표로 기준금리를 0.25%까지 추가 인하했지만 12월 물가는 더욱 떨어진 것으로 나타나 위기감을 키우고 있다. 재작년부터 인플레이션이 추세적으로 하락하고 있어 이대로 하락세가 더 깊어진다면 디플레이션 발발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들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지금 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인플레이션 수치를 2%선까지 끌어올린다는 ECB의 목표는 물론 올해 물가상승률 1.1% 상승을 달성하겠다는 자체 전망도 요원할 것이라는 지적도 잇따르고 있다.
켄 워트렛 BNP파리바 이코노미스트는 파이낸셜타임스(FT)에 "인플레이션 수치가 안심할 수 없게 낮아 걱정스럽다. 내림세도 완연하다"고 경고했다.
물론 전문가들은 유로존이 9일 유로존 통화정책회의 이후 추가적인 특별조치를 내놓기는 힘들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기준금리 인하효과를 충분히 확인하기에는 아직 시일이 짧은 편인데다 긴축을 주장하는 독일의 반발을 넘어서야 한다는 '장벽'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FT는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가 기준금리 추가 인하나 시중은행 예치금리를 마이너스로 낮추는 등의 수단을 쓸 수 있음을 제시하는 선에서 그칠 것"이라고 평했다. 앞서 드라기 총재는 지난해 12월 기자회견에서 "인플레이션 둔화가 몇달 이어질 것으로 보이지만 디플레이션을 걱정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ECB가 디플레이션 저지를 위해 좀 더 전향적인 추가 조치를 내놓아야 한다는 목소리는 권역 내에서 갈수록 커지고 있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유로존이 일본처럼 디플레이션 사례를 따르게 된다면 '더블딥' 침체 이후 분투 중인 권역 국가들의 고통이 가중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가운데 미국은 유로존 최대 경제국인 독일에 경기부양을 위한 내수확대를 거듭 압박했다. 유럽을 방문하고 있는 잭 루 미 재무장관은 이날 피에르 모스코비시 프랑스 재무장관과 회담한 후 "(유로존) 일부 국가가 역내 다른 나라보다 내수를 더 확대할 수 있는 여력이 분명히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