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갤러리현대에서는 여류작가 김명희 초대전을 5월 1일부터 13일까지 연다.
김명희는 17년간의 뉴욕생활을 뒤로하고 90년 소양강 댐 건설로 인근이 수몰되면서 폐교가 된 학교에 자리를 잡은지 13년째를 맞고있다. 강원도 춘성군 내평리의 궁벽한 산골 오지마을에서 살며 작업하는 작가는 그 곳에 버려져 있던 철판을 찾아내면서 칠판을 이용한 새로운 작업세계에 뛰어들었다.
캔버스가 된 칠판에는 한 때 그 곳에서 공부를 했던 아이들의 낙서 자국이 함께 살아나면서 기묘한 시간의 중첩을 연출한다.
작가는 또 칠판그림에다 비디오를 결합시켜 정지된 이미지와 움직이는 이미지의 만남을 주선한다. `김치 담그는 날`같은 작품은 같은 맥락에서 그림 속의 그림이라 불릴만한데 김치를 만들고 있는 작가 자신의 모습과 그가 빠져있는 생각의 세계를 이중으로 인화하고 있다.
지난 95년의 개인전에서는 폐허가 되다시피 한 산골마을에서 작가가 겪었던 인간적 예술적인 비망록으로 상실을 다루고 있었다면, 이번 전시는 뿌리뽑힘의 역동성으로 기동성이 한층 강화됐다.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한 고려인들을 다룬 칠판화 `강요된 유전`은 작가가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고통스러웠던 뿌리뽑힘의 역사를 되밟는 과정을 담은 비디오 설치물로 작가의 그와 같은 상념을 잘 보여준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사실주의 화법으로 시간의 흔적을 묘사하고 생활 속의 느낌을 심도 있게 표현한 기존의 작품들과는 달리 전체적으로 상상적 리얼리즘이나 마술적 리얼리즘의 경향을 보여준다. (02)734-6111.
<이용웅기자 yyong@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