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떠오르는 기회의 땅] 2-3. 메이디 인 코리아 넘버 원

유럽에서 가장 큰 가전 양판점인 `미디어 마크트`의 폴란드 브로추와브시 지점(바르샤바에서 남서쪽으로 400㎞). 현지인들이 즐겨찾는 이곳엔 한쪽 벽면이 LG전자의 60인치 PDP TV 15대로 완전히 도배돼 있다. “유통업체로서는 파격적인 배려다. 이는 그만큼 LG전자의 제품 판매와 브랜드 인지도가 급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실제로 소니 등 세계적인 메이커를 제치고 모니터ㆍ에어컨 등 6개 제품이 지난해 판매 1위를 기록했다.”(신동웅 폴란드 판매 법인장) 바르샤바의 또 다른 양판점인 `유로`. 이곳에서도 LG전자, 삼성전자의 29인치 완전평면 컬러 TV는 일본 소니와 같은 가격인 2,799주어티(86만원 가량)에 팔리고 있었다. 한국산 가전제품을 찾는 부유층 고객이 급격히 늘면서 자연스럽게 최고급 제품으로 자리를 잡았다는 의미다. ◇`메이드 인 코리아` 바람= 현재 LGㆍ삼성전자 등 전자업체는 동유럽의 터줏대감인 필립스ㆍ소니 등을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추격하면서 한국 바람을 주도하고 있다. 삼성전자 컬러TV는 헝가리ㆍ불가리아ㆍ크로아티아에서 1위를 차지했고, 모니터는 발틱 3국ㆍ슬로베니아ㆍ크로아티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특히 주력 시장인 폴란드의 경우 지난해 매출이 1억9,000만 달러로 3년만에 164%나 늘었다. “TV 시장의 경우 소니가 선두를 달리는 가운데 필립스, 삼성ㆍLG전자가 2위권을 형성 중이다. 필립스가 과거 명성으로 겨우 버티는 것을 감안하면 실질적인 경쟁자는 소니 하나 뿐이다.”(김진안 삼성전자 폴란드 판매법인장) 삼성전자 헝가리 공장도 컬러TVㆍ전자레인지ㆍ모니터 등이 모두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하는 등 매년 매출이 50% 가까이 늘고 있는 상태다. 특히 주목할만한 것은 이 같은 성장세를 휴대폰ㆍ디지털TV 등 고부가 제품이 주도하고 있다는 점. 이 때문에 LG전자는 지난해 10월 1,000만 달러를 투자, 폴란드 무와바 공장을 PDP TVㆍLCD TV 등 디지털 TV 생산기지로 탈바꿈시켰다. ◇국산차도 판매 급증= 폴란드ㆍ체코 등 동유럽 거리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자동차들은 도장이 벗겨지고 범퍼가 찌그러져 굴러다니는 게 신기할 정도로 낡았다. “자동차를 거의 무상으로 주던 사회주의 정권이 무너진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자동차 평균 수명(한국 7.6년)은 폴란드 15년, 체코 13.7년, 유고 15.7년에 달한다. 25년이나 된 자동차가 굴러다니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장석산 현대차 동유럽 판매총괄 본부장) 이 때문에 최근 경제 성장으로 구매력을 확보한 중산층에게 값싸고 품질 좋은 현대ㆍ기아차는 폭발적인 인기다. 체코 프라하에서 만난 전업 택시기사인 마르틴(37)은 “지금 갖고 있는 차는 일본의 `마쯔다323`인데 조만간 현대차 `겟츠(국내 브랜드명 클릭)`로 바꿀 생각이다. 주변에도 적극 추천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폴란드ㆍ체코 등 동유럽 4개국의 현대차 판매량은 1만798대로 전년에 비해 45.9% 급증했다. 또 기아차도 지난해 7,836대를 팔아 증가율이 21.7%에 달했다. ◇자동차 황금 시장으로 떠오른다= 현재 한국산 등 비(非) EU산에 붙는 관세는 폴란드 35%, 체코ㆍ슬로바키아 17.1%, 슬로베니아 19%, 루마니아 32.5%다. 반면 유럽연합(EU)산은 관세율이 0%다. 하지만 동구국가가 EU에 가입하는 오는 5월이면 EU산과 한국산에 똑같이 10%의 관세가 붙는다. 국내업체로서는 제품 판매에 또 하나의 날개를 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현대ㆍ기아차는 앞으로 2~3년내 판매가 2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기아차의 경우 지난해 쏘렌토를 320대 판매한 데 이어 올해 목표를 1,200대로 잡았다. 장 본부장은 “동구 시장은 급속한 경제 성장으로 구매력이 커지고 있는 데다 중고차 교체 수요도 많은 편”이라며 “관세까지 내릴 경우 그야말로 국내 자동차 판매의 황금 시장으로 떠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東유럽 투자열풍 車메이커가 주도 현재 동유럽 투자열풍의 선두 주자는 자동차 메이커다. 지난 90년 이후 자동차 부문의 외국인직접투자(FDI)는 68억 유로에 이른다. 공급 과잉으로 무한경쟁이 지속되자 저렴한 인건비를 활용, 가격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덩달아 동구권 현지 수요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는 점도 투자를 촉진시키는 요소다. 슬로바키아에는 푸조ㆍ시트로앵 합작사인 PSA가 7억 유로를 투자, 연산 30만대 규모의 공장을 짓기로 했다. 이곳엔 이미 독일 폭스바겐이 연산 30만대 규모의 생산 공장을 가동, 22만여대를 유럽에 수출 중이다. 체코에도 도요타가 15억 유로를 투자, 2005년 양산을 목표로 연산 30만대 규모의 공장을 짓고 있다. 또 스코다라는 현지업체는 지난 91년 폭스바겐에 팔려 지난 2002년 7만여대를 현지 판매하고 있다. 서방자본이 가장 먼저 접근했던 폴란드엔 피아트(연산 30만대 규모), GM오펠(15만대), 폭스바겐(5만5,000대) 등 완성차는 물론 50여개의 부품업체도 진출해 있다. 또 헝가리에도 독일 아우디가 추가로 10억 유로를 투자, 생산량을 대폭 늘리기로 했으며 일본 스즈키도 생산 규모를 현재 8만8,000대에서 2005년까지 20만대로 늘릴 방침이다. 부활하는 세계화경영 지난해 연말 폴란드 바르샤바 교외의 한 한국 식당. 대우일렉트로닉스ㆍ인터내셔널ㆍ정보시스템 현지법인의 `대우맨`들이 김치찌개를 안주삼아 보드카를 마시며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었다. 본국으로 떠나는 대우FSOㆍ대우건설 동료들을 환송하는 자리였다. “한창 힘들 때는 얼굴을 마주치는 것 자체를 서로 피했다. 그게 가장 후회가 된다. 하지만 이제라도 웃으면서 만나니 다행이다.”(김형철 대우정보시스템 폴란드법인 대표) `세계화 경영`의 원조인 대우 그룹의 동구 법인들이 과거의 회한을 접고 재기의 날갯짓을 활짝 펴고 있다. 폴란드의 대우일렉트로닉스 법인, 루마니아의 대우해양조선과 대우차 생산법인이 바로 그들이다.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자작나무 숲과 푸른 밀밭이 펼쳐지는 시골길을 30분쯤 달리자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는 대우일렉트로닉스 영상법인이 나타난다. 공장은 하루 2시간 잔업에다 120여명의 임시직까지 고용하면서 주문량 대기에 바쁜 모습이었다. “대우 사태 때는 다 때려치우고 귀국하고 싶은 마음뿐이었지만 오기 하나로 버텼다. 이번 연말에 인사차 승용차를 몰고 폴란드 전역을 돌아다니는데 거래선들이 모두 재기를 축하해줬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이인희 폴란드 법인 차장) 백기호 법인장은 “TV 시장 점유율이 지난 2002년 0.5%에서 2003년 9월에는 10.6%로 뛰어올랐다”며 “매출도 2002년 2억 달러, 2003년 2억5,000만 달러를 달성한 데 이어 올해는 3억 달러를 목표로 잡았다”고 말했다. 대우 영상법인은 조만간 생산라인을 프로젝션ㆍPDP TV 등으로 교체, 유럽 디지털TV 시장 공략의 거점으로 육성할 방침이다. 대우해양조선 망갈리아 조선소도 `제2의 도약`을 선언한 상태다. 지난 97년 인수 당시 2,600만 달러이던 매출은 지난해 9,800달러로 늘었고, 경영손익도 860만 달러 적자에서 1,030만 달러로 반전됐다. 임문규 망갈리아 조선소 사장은 “지난해 7월 전략 회의를 계기로 중대형급 수주, 시장다변화 등을 통해 2005년에는 매출 2억 달러를 달성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GM 인수 대상에서 제외되면서 한때 생존이 의심 받던 대우차 루마니아 법인도 사실상 재기에 성공했다. 이 법인의 지난해 판매는 2만3,449대로 지난 2002년보다 79.1%나 늘었다. 이종호 대우건설 해외건축팀 차장은 “그룹은 해체됐다. 하지만 국교조차 수립되지 않았던 90년대초부터 동유럽을 맨발로 누비던 대우맨 특유의 저력마저 죽은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부다페스트(헝가리)= 김형기기자/바르샤바(폴란드)= 최형욱기자 kkim@sed.co.kr/choihuk@sed.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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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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