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인의 탄생으로 워싱턴 정가가 보수에서 진보로 바뀌면서 세계 경제질서에도 일대 변화가 불가피하게 됐다. 벌써부터 프랑스와 독일을 중심으로 하는 유럽연합(EU)과 영국 등 세계 각국의 정상들이 새로 등장할 오바마 정부에 대해 이러저러한 ‘개혁제안(의향)서’를 내고 있다. 오바마 당선인은 일단 오는 15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열리는 선진ㆍ신흥 20개국(G20) 정상회담에는 참여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조지 W 부시 현 미국 대통령의 입장을 고려해서다. 그렇다고 해도 이 자리에 참석하는 세계 각국 정상들의 눈과 귀는 온통 오바마 당선인에게 쏠릴 것이 뻔하다. 앞으로 새로운 구상의 윤곽을 그리기 위해서는 오바마 당선인의 의향을 구하는 것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유럽의 정상들이 우선 요구하는 것은 지난 60여년간 국제 금융질서를 유지하는 기본틀이었던 IMF 체제의 개편이다. IMF는 달러기축통화 체제에서 달러부족 국가들에 긴급 구제금융을 제공하면서 국제 금융질서의 안정에 기여해왔다는 평가다. 그러나 기금 규모가 2,000억달러에 불과해 회원국들의 추가적인 지원 없이는 환란국을 구제하는 데 드는 유동성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다는 한계를 안고 있다. 또 최근 금융위기를 불러온 국제 투기자본을 규제하는 권한이 없어 첨단 금융기법을 동원한 투기자금의 현란한 자본이동에 무력할 수밖에 없었다는 비판도 있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과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는 이 같은 IMF 체제의 혁신을 위해 ‘신브레턴우즈 체제’ 도입에 관심을 갖고 있다. 이들은 일찍부터 기존 미국 중심의 금융질서를 대신할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하고 새로운 글로벌 금융 시스템 도입을 위해 서로 공조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7일(현지시간) 사르코지 대통령은 G20 정상회담에 앞서 열린 EU 27개국 비공식 정상회의에서 ▦IMF 등 국제금융기구의 개혁 ▦ 금융기관의 비유동자산 등에 대한 자산평가 회계기준 재검토 ▦금융위기를 제때 경고하지 못한 신용평가기관의 책임과 윤리규정 제정 ▦은행 임직원들의 임금 급여제한 ▦감독의 ‘사각지대’에 놓인 헤지펀드와 사모펀드 등에 대한 규제 도입 등을 담은 초안을 제출했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이 초안을 유럽 공동안으로 채택하는 동시에 여의치 않으면 내년 2월 파리에서 예정된 다음 G20 정상회담의 의제로 삼을 계획이다. 브라운 총리도 이번 G20 정상회담이 망가진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는 출발점이 돼야 하고 경쟁력 있고 효율적인 금융감독 기능을 마련하는 자리가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 다른 현안은 결제통화 다변화. 특히 중국과 러시아는 막대한 달러화를 보유한 채 루블화와 위안화를 결제통화로 인정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2차대전 이후 지속돼온 미국 중심의 달러단일체제에 도전하고 있는 셈이다.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는 지난 10월28일 모스크바에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과 회동하며 “지금이 새로운 국제금융질서 건설에 가장 적합한 시기”라면서 “중국과 러시아가 미 달러화가 독점해왔던 기축통화의 지위를 다른 국가들과 나눠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이번 금융위기를 기화로 2조달러의 막대한 외화를 보유하고 있는 중국이 러시아 및 다른 유럽국가들과 함께 공동전선을 구축, 달러의 지위를 흔들기 위한 작업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으로 풀이됐다. 각국이 자국 통화의 결제통화 인정을 요구하는 것은 국제정치적 위상 확대뿐 아니라 통화 발행국에 돌아가는 막대한 세뇨리지 게인(seigniorage gainㆍ통화 발행국의 경제적 이득) 효과 때문이다. 이와 관련, 이번 G20 정상회담에서 어떤 밑그림이 그려질지 주목된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브레턴우즈 체제를 대신할 ‘신브레턴우즈 체제’의 등장이나 다중 결제통화의 도입 등은 아직 시기상조라는 입장이 우세하다. 금융산업 규제는 시장에 대한 간섭으로 이어져 자칫 시장활동 자체를 위축시킬 위험이 높다는 것이다. 또 달러 외에 위안화나 엔화ㆍ유로ㆍ파운드화 등의 국제화는 바람직하기는 하지만 국제 금융시장의 내외적 여건이 아직 성숙돼 있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다른 통화들이 달러를 대체하기 위해서는 해당 국가의 경제력뿐만 아니라 정치사회적 선진화와 안정화가 선행돼야 하는데 아직 이런 조건을 충족한 나라는 많지 않다는 것이다. 새로운 금융질서 수립을 강조하고 영국의 경우 비록 프랑스와 공조를 취하고 있기는 하지만 금융산업에 대한 대폭적인 감독이나 규제에 대해서는 소극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영국이 사실상 미국과 함께 전세계 금융산업을 양분해왔고 따라서 이에 대한 규제 강화는 자국 산업 활력을 고갈시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하지밍 중국국제금융공사(CICC) 수석 연구원은 “글로벌 금융위기는 위안화의 국제화 등 세계금융질서 재구축에 더 없는 호기지만 지금 당장은 실현할 수 없다고 본다”면서 “그에 앞서 중국 경제의 안정적인 발전이 선결돼 역내 통화로서의 역량을 키워야 하고 위안화의 신뢰성 확보를 위해 환율결정의 시장화 등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