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타 회장 "그룹 후계자 친족에서만 뽑지 않겠다" 선언<br>타타선스 "타 민족·외국인도 대상 전문경영체제 도입 모색"<br>"다국적기업 변신 위해 필요" vs" 경영권 불안" 찬반 논란속<br>기업집단들 해외진출 성공땐 '가족경영' 다시 힘 받을수도
| 라탄 타타 타타그룹 회장이 지난달“후계자(후임 회장)를 친족에서만 뽑지는 않겠다”며 전문경영인 체제로의 전환 가능성을 열어두자 인도 기업집단들에 대한 지배구조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타타 회장이 지난 1일 인도 뭄바이에서 열린 타타자동차의 연례 주주총회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뭄바이=블룸버그통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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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114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시가총액 3조7,100억루피(약 92조원)의 인도 최대 기업집단인 타타그룹은 인도를 대표하는'국민기업'으로 통한다. 타타 그룹은 또한 인도식 '가족 경영체제'의 상징과도 같다.
지난 1868년 면화 무역회사에서 출발한 타타그룹은 지금까지 5대를 내려오며 철저하게 파르시(Parsi)족의 친지 내에서만 후계자를 뽑아왔다. 파르시족은 현재 인도 내에 5만여명에 불과한 소수민족으로, 창업자인 잠세트지 타타가 이 민족 출신이다.
그런데 타타그룹의 이러한 전통이 이번에는 깨질 가능성이 생겼다. 라탄 타타(73) 타타그룹 회장이 지난달 "예정대로 75세(2012년)에 은퇴하겠다"고 하면서 "후계자를 기존처럼 친족에서만 뽑지는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에 타타선스(타타그룹 지주회사)는 후임 회장을 선출할 '5인 위원회'를 구성하고 "파르시족 이외의 민족, 해외거주 인도인, 심지어 외국인도 후보자로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6일 파이낸셜타임스(FT)는 타타그룹을 시작으로 인도의 주요 기업집단들에서 유일한 경영체제였던 가족경영 체제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고 보도했다. 가족경영 체제가 장악해온 인도 재계에 기업지배 구조에 대한 새로운 목소리가 요구되는 것이다. 이와 관련, 인도 기업집단들이 최근 해외기업의 인수합병(M&A)에 적극 나서고 있는 점도 경영체제를 둘러싼 논쟁과 연관이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 인도 가족경영 체제에 변화의 바람 = 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에 따르면, 지난 2007년 현재 인도 센섹스지수를 구성하는 30곳의 주요 기업들에서 17곳이 가족경영 체제를 택했고, 올해에도 상황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특히 10대 기업집단들은 모두 가족경영 체제이다.
실제 인도 경제에서 가족경영 체제 기업들의 영향력은 매우 크다. 민간 경제부문에서 절반에 육박하는 비중을 차지하고 전체 고용의 40% 가까이를 책임진다. 인도 국민의 절반 가량이 농민인 점을 감안하면 매우 높은 수치이다.
인도 기업집단들은 독립 이후 정치인들과 유착관계를 맺어 은행대출을 독점하고 규제를 통해 경쟁업체들의 성장을 가로막는 특혜를 누리며 몸집을 불려왔다고 FT는 지적했다. 뉴델리 산업발전연구소의 수라지트 마줌다르 연구원은 "인도 기업집단들은 이러한 '정실 자본주의'(crony capitalism)를 통해 막강하게 성장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러한 인도 기업집단에도 이사회가 있지만 사실상 창업주 일가의 거수기에 불과한 탓에 기업 지배구조에 대한 비민주성은 그 동안 많이 지적됐다. 여기에 타타그룹과 릴라이언스그룹 등 인도의 대표 기업집단들이 다국적회사로 더욱 커나가기 위해선 현재의 폐쇄적인 의사결정구조에 변화가 가해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힘을 얻어왔다.
이에 인도 기업집단들은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일찌감치 '후계수업'을 준비하거나 아예 외부인재의 영입에 나서는 것이다. 인도 최대 이동통신업체인 바르티 에어텔은 수니 미탈 회장의 아들인 슈라빈(23)을 자회사의 관리직에 임명하며 후계자 양성에 들어갔다. 인도 2위의 정보통신(IT)회사인 인포시스의 경우 창업주인 나라야나 무르티 현 회장을 이을 인물을 외부에서 찾는 파격을 감행하고 있다. FT는 타타그룹의 후계자 선출 결과가 앞으로 인도 기업집단들이 전문경영인 체제를 채택할 지 여부에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 인도식 가족 경영체제의 장점 =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가족경영 체제는 신속한 의사결정과 자본집중으로 외부 다국적기업과의 내수시장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게 해 인도 경제가 가파른 성장을 달성하는 데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인도 경제는 견조한 내수신장에 힘입어 지난 2008년부터 지금까지 매분기 마다 6~8%(전년 동기 대비)의 높은 성장률을 보여왔다.
또한 수십여개의 자회사를 갖고 있는 인도 기업집단의 총체적 경영을 외부인사가 이른 시일 내에 파악할 수 있느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타타그룹의 한 관계자는 "타타그룹은 매우 복잡한 투자 포트폴리오를 가졌을 뿐 아니라 빈민구제를 위한 교육ㆍ의료ㆍ스포츠 지원 등의 폭넓은 봉사의 전통도 유지하고 있다"며 "이처럼 회사의 문화까지 파악해야 하는 어려운 일에 누가 최적임자일까"라고 반문했다.
특히 서구 학자들과 언론들이 그간 인도 등 신흥국가들에 전문경영인 체제의 도입을 강요한 데 대한 반성의 목소리가 서구 내에서도 나오고 있다. 제프리 오언 런던정경대(LSE) 연구원은 최근 FT 기고문에서 "인도와 한국, 터키 기업집단들의 눈에 띄는 성공사례는 가족경영체제 및 사업다각화 전략이 글로벌 시장에서도 기업경쟁력 향상의 유해 요인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 해외진출의 성공 여부가 지배구조 논쟁에 영향 = 다국적회사로의 변신을 꾀하는 인도 기업집단들이 최근 해외기업 사냥을 활발히 추진하면서 지배구조 논쟁에도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안정된 경영권과 계열사를 통한 자금조달 등 가족경영 체제의 특징들이 해외기업 M&A 과정에서 빛을 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리서치업체 VCC에너지에 따르면 지난 7월 현재 인도 기업들의 M&A 건수는 411건으로 전년 동기(453건)에 비해 줄었다. 그러나 7월 M&A 규모는 총 497억달러로 전년 전체의 규모인 163억달러의 3배가 넘는다. M&A 건수는 줄어들었지만 큰 규모의 거래가 활발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석유와 가스, 전력 등 에너지 분야와 함께 철강과 통신 부문에서 글로벌 진출에 분주한 에사르그룹을 소개했다. 경쟁사인 릴라이언스그룹이 경영권 장악을 둘러싼 8년간의 '형제의 난'으로 결국 두 그룹으로 나눠진 데 비해 에사르그룹의 경우 두 형제가 원만한 사이를 유지하면서 사업확장에서도 승승장구하고 있다.
인도 기업집단 내의 극심한 집안갈등은 인도 총리까지 개입하게 하는 등 사회적 문제로 비화하기도 했다. 현지 언론들은 그러나 타타그룹이 '국민기업'으로 올라선 데에는 식민 지배국인 영국의 철강ㆍ자동차 회사를 인수했던 게 중요했다는 점을 지적하며"인도 기업집단들이 무리없는 경영을 바탕으로 해외진출에서 성공적인 모습을 보여주면 지배구조 논란은 잠잠해질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