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제시대의 특징 중 하나가 정치가 불안하면 경제도 흔들린다는 것이다. 2002년 대선을 앞두고 브라질 경제 위기가 악화됐고, 터키에선 총리가 재무장관을 해임하면서 경제난이 가중됐다. 2001년 아르헨티나의 국가파산 선언도 정치 위기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정치 위기가 반드시 경제 혼란을 초래하는 것은 아니다. 수십년간의 군부독재 잔재를 청산하고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선 칠레에서 경제 위기가 없었고, 반세기 이상 정권을 장악한 제도혁명당이 패배하고 야당이 집권한 멕시코에서 선거때마다 나타나던 경제적 동요는 없었다.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을때와 그렇지 않을때의 차이는 정치권이 경제문제를 건드렸는지 하는 점이다. 브라질에선 노동자당 후보가 외채 상환 거부를 공약으로 내걸었고, 터키에선 경제 개혁에 앞장섰던 재무장관이 정쟁으로 경질됐으며, 아르헨티나에서도 재정 개혁안이 번번히 좌절되면서 정치 혼란이 경제 위기로 전환됐었다. 이에 비해 중도 좌파 정권이 들어선 멕시코와 칠레에서 경제적 혼란이 없었던 것은 어느 세력도 시장경제 질서와 자유무역주의를 실천한다고 국제사회에 공약했기 때문이다.
무디스의 톰 번 부사장은 “정치적 변화가 국가신용평가의 주요 관심사항이지만, 순수한 정치 사건은 주목하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 즉, 단순한 정권교체, 정쟁은 신용평가의 기준이 되지 않고 정치 문제로 시장경제의 원칙 또는 재정과 금융등에 중요한 변화를 야기시킬 경우 그 나라의 정치 변화를 관찰한다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재신임을 제의하면서 한국에선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뉴욕 월가의 투자자들은 한국 정치판의 시끄러움을 지켜는 보고 있지만, 미국과 일본 경제의 회복세에 따라 한국 경제도 회복될 것이라는데 보다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문제는 연말로 예정된 재신임, 내년 4월의 총선에 이르기까지 정치 혼란기에 정부가 한국 경제에 크게 영향을 미칠 문제를 추스리지 못할 경우다. 이라크 파병 문제, 노사 분규, 북한 핵문제 등이 리더십 부재 상태에서 국론 갈등을 야기시킬 경우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의 정치 문제를 경제문제와 연결시킬 수도 있다. 정치권이 경제와 외교 문제만큼은 초당적으로 대처하기로 합의할 경우 아무리 거센 정치 파동도 경제에 관한한 찻잔속의 태풍에 그칠 것임을 다른 나라의 예에서 알 수 있다.
<양정록기자 jryang@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