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서경이 만난 사람] 박종수 금융투자협회장

부처 유보금 '연기금 풀' 방식으로 운용… 기관 역할해야<br>대형증권사 M&A 통해 시장 선도 증권사 육성 필요<br>중소형업체 특화·전문성 갖추려면 구조조정 불가피<br>동양 계기 투자자보호 강화·금융상품 AS 제도화 시급



"정부는 지난 2001년부터 국민주택기금ㆍ신용보증기금ㆍ예금보험기금 등 소규모 연기금의 여유자금을 한데 모아놓은 투자 풀(pool)을 구성해 13조원 규모의 자산을 운용하고 있습니다. 정부 산하 각 기관의 유보금도 이처럼 연기금 투자 풀 방식으로 한데 모아 운영하면 수십조원 규모의 기관투자가가 여러 개 생길 수 있습니다."

박종수(67ㆍ사진) 금융투자협회장은 20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자본시장 발전을 위해 기관투자가의 역할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라고 역설했다.


박 회장은 "한국 증시는 단기 투자자 위주로 형성돼 있어 변동성이 크고 안정성이 떨어진다"며 "이를 타파하기 위해 장기 기관투자가의 육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기관투자가의 역할이 확대돼 장기투자 자금이 늘어나면 국내 증시의 변동성이 줄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것이 촉매가 돼 자본시장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도 회복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결국 현재 은행 예금 등 원리금 보장형 상품에 쏠려 있는 자금이 자본시장으로 흘러오는 선순환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기관투자가의 역할 확대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국내 주식시장에서 기관투자가 비중은 15.8%로 미국(47.2%), 일본(30.0%)에 비해 크게 낮은 편이다.

국내 금융산업에서 증권업이 차지하는 비중도 매우 낮다. 국내 62개 증권사 전체 순이익(1조2,000억원)이 하나의 대형은행(신한은행ㆍ1조6,000억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다. 자산도 은행예금과 보험료 적립금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데 반해 펀드 규모는 2009년 332조원에서 2012년 317조원으로 감소하는 등 자본시장으로 돈이 흘러 들지 않고 있다.

박 회장은 기관투자자 육성을 위해 각기 분산돼 있는 정부 부처와 산하기관의 자금을 연기금 투자 풀로 확대하는 것을 하나의 아이디어로 제시했다. 연기금 투자 풀은 소규모 연기금들이 자금을 독립적으로 운용하는 것보다 한데 모아 운용할 경우 안전성이 강화되고 수익성이 커질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해 기획재정부가 도입한 제도다.

그는 "현재 정부 산하기관별로 따로 자금을 운용하고 있는데 상위 부서에서 운용 지침을 내려주긴 하지만 예금 위주로 투자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연기금 투자 풀처럼 자금을 모은 뒤 운용은 전문가가 하고 집행이 필요하면 금융기관이 바로 자금을 내주는 모델을 생각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부처 자금 관리를 연기금 투자 풀로 확대해 운용 전문성을 높일 뿐 아니라 자투리 자금을 한곳에서 운용해 규모의 경제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박 회장은 국내 퇴직연금 시장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급속히 고령화 사회에 진입하고 있는데 연평균 6% 정도의 수익률을 내야 이후 소득의 70~80% 정도를 연금으로 제공할 수 있다"며 "지금과 같은 저금리 시대에는 자본시장에 투자해서 수익을 내지 않으면 대안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호주의 경우 퇴직연금의 활성화에 따른 장기 상품의 필요성이 높아지며 맥쿼리펀드가 탄생한 것"이라며 "한국은 장기상품이 없어 해외 상품에 투자하고 있는데 퇴직연금 시스템을 바꿔 장기적인 플랜을 가져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회장은 또 "미국과 호주의 경우 퇴직연금을 도입하며 자산운용업의 규모가 크게 확대됐듯 자본시장과 연금시장 간 튼튼한 선순환 고리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정부도 퇴직연금을 업계의 문제가 아니라 고령화 대책의 일환으로 보고 장기적인 플랜을 짜서 전략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그는 침체된 금융투자 시장의 근본적인 시스템 변화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증권사 간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군소 증권사들이 난립해 출혈경쟁으로 이어지는 시장의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박 회장은 "국내 62개의 증권사가 있는데 이는 학술적으로도 많은 숫자"라며 "취약한 자본력과 서로 비슷한 비즈니스 모델로 서로 브로커리지(위탁매매) 중심의 출혈경쟁만 이어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지속된 실적악화와 과당경쟁에도 증권사 간에 차별성이 없으니 M&A를 통한 시너지 창출 효과도 기대하기 어려워 구조조정이 이뤄지지 않는 것"이라며 "선도증권사의 출현으로 대형사와 중소형사 간 구도를 재편하고 각 회사별로도 전문화ㆍ특화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이후 시너지 창출을 목적으로 한 M&A도 더욱 활발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박 회장은 특히 대형증권사 간 M&A가 구조조정의 '트리거(방아쇠)'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는 "KDB대우증권이나 우리투자증권처럼 규모가 큰 증권사 간 M&A를 유도해 업계를 선도할 수 있는 대형증권사를 육성해야 한다"며 "이를 통해 위험인수 능력을 높여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보여주고 금융투자업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글로벌 투자은행(IB)을 상대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라도 선도증권사의 탄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금투협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한국의 5대 대형증권사의 평균 자기자본 규모는 3조4,000억원으로 골드만삭스(77조1,000억원)의 23분의1, 노무라증권(25조7,000억원)의 8분의1 수준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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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투자은행의 성장을 위한 정부의 정책적 지원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박 회장은 "투자은행의 경쟁력은 기본적으로 위험 인수 능력을 키우는 것"이라며 "투자은행이 자기자본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현재 과도하게 규제되고 있는 영업용순자본비율(NCR)에 대한 전향적인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국내 투자은행의 실적 축적(트랙 레코드)을 위해 공공기관의 글로벌 채권 발행이나 해외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 대형 거래에 국내 IB가 대표 주관사로 참여할 수 있도록 정부차원의 배려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근 동양사태와 관련해서는 "이번 동양사태를 계기로 투자자 보호에 관한 근본적인 기준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며 투자자 보호와 시장발전 간 균형을 강조했다. 박 회장은 "기본적으로 투자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에게 있다"며 "투자자의 위험 성향을 그룹으로 나눠 매트릭스화한 뒤 그 범위에서 투자 상품을 선택할 수 있도록 유도할 수 있는 제도적 방안이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상품의 사후 관리도 강조했다. 박 회장은 "금융상품도 애프터서비스(AS)가 필요하다"며 "자동차ㆍ가전제품을 구매하면 제조업체가 서비스 관리를 해주듯이 금융상품도 투자 대상의 신용등급이 낮아지거나 시장 상황이 바뀌면 적극적으로 고객 관리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도적인 측면에서 자문업 시스템의 정비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박 회장은 "외국은 투자상품을 사는 소비자와 판매자 사이에 독립 자문업자가 있어 직접적인 이해 충돌을 피하고 있다"며 "한국도 자문업 시스템을 잘 정비해 불완전판매를 해소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He is…

▲1947년 서울 ▲1966년 경기고 ▲1970년 서울대 무역학과 ▲1988년 연세대 경영대학원 석사 ▲1988~1989년 한외종합금융 이사 ▲1990~1998년 헝가리 대우은행 행장 ▲1998~1999년 대우선물 대표이사(대우증권 전무겸직) ▲1999~2004년 대우증권 대표이사 ▲2001~2003년 한국증권업협회 부회장 ▲2005~2009년 우리투자증권 대표이사 ▲2010~2012년 메리츠종금증권 사외이사 ▲2012년~현재 금융투자협회 회장








금융투자시장 업그레이드 하려면


증권사 외형성장 집착 말고 차별화 된 사업모델 구축을

금융투자협회가 25일로 창립 60주년을 맞는다. 박종수 금투협 회장은 한국 자본시장이 지난 60년간 양 키우기에 치중했다면 앞으로는 질 높이기에 나서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박 회장은 "국민소득이 2만달러에서 3만달러로 가려면 사회 시스템이 양보다 질 기준으로 넘어가야 한다"며 "금융투자업도 지금까지 시장점유율에만 집착하고 외형 유지에 급급하던 것에서 벗어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위해서는 증권사별로 차별화된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해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며 "정부도 '좋은 규제'로 이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박 회장의 이러한 인식은 증권사의 낮은 수익성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증권사의 자기자본이익률(ROE)은 3.0%다. 은행(6.4%)과 생명보험(6.4%)의 절반 수준이다.

박 회장은 "선진국에서 금융기관에 대한 평가기준은 즉 자본을 투입해 얼마나 벌 수 있는지를 알아보는 ROE"라며 "이제는 국내 증권사도 자산규모나 자본금ㆍ인원 같은 외형보다는 수익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재구성 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국내 증권사들도 이를 통해 경쟁력을 확보하면 해외시장에서도 얼마든지 성공사례를 만들 수 있을 것이란 얘기다.

박 회장은 "스페인의 산탄데르은행은 국내 성공모델을 만든 뒤 이를 바탕으로 해외 진출할 때도 스페인어권 나라부터 시작했다"며 "한국 증권사도 국내에서 차별화된 경쟁력을 인정받고 그 모델로 아시아시장으로 진출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종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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