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연일 고공비행… 대그룹도 결제 어려움/일각선 무기명장기채 등 특단대책도 거론금융시장은 우리 경제의 핏줄이다. 그러나 지금 핏줄이 막혀 피가 돌지 않고있다.
금리는 법으로 정해놓은 한도인 연25% 가까이 치솟고 다급해진 기업들이 금리를 아무리 높게 제시해도 필요한 돈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 이달들어 10개 상장 중견기업이 부도를 냈고 대그룹들도 하루하루 자금결제에 어려움을 겪는 등 이제 금융권을 둘러싼 먹구름이 실물경제로 이동하고 있다.
금융시스템 붕괴의 대가는 엄청나다. 이미 금융시스템 붕괴를 경험한 북유럽 국가들이나 멕시코 등의 경우 금융시스템을 원상복구하는데 수백억달러를 쏟아부어야 했다. 금융시스템이 무너지면 산업구조조정이든 재정, 통화긴축이든 어떤 종류의 위기대응책도 효과를 낼 수 없고 성공도 보장할 수 없는게 현실이다.
현재 상황은 심각하다. 회사채유통수익률은 지난 26일 무작정 돈을 푸는 것을 골자로 한 금융시장안정대책에 힘입어 연17%선에서 턱걸이를 했지만 주변여건은 나아진게 없어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많은 전문가들은 연20% 이상의 고금리가 최소한 6개월 이상 지속될 것으로 보고있다.
기업어음(CP) 금리는 연25%를 목전에 두고 있다. 기업들이 너나없이 CP발행에 뛰어들고 있지만 이를 중개해줄 종금사를 찾을 수 없다. 은행권이 27일 종금사와의 CP거래규모를 현수준으로 유지하겠다고 결의했지만 결과는 미지수다. 주가는 연일 폭락, 종합주가지수 4백선조차 위태롭다.
금융권은 그동안 연기금의 주식매입 확대, 무기명 장기채권 발행, 한국은행 특융 등을 꾸준히 요구해왔다.
특히 무기명장기채권은 금융실명제의 근간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이루어질 경우 상당한 성과를 낼 수 있는 유력한 대안이다. 집안 장롱 속에 숨어 있는 퇴장화폐를 금융시장으로 끌어낼 거의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금융계는 금융시장을 떠나 퇴장해버린 자금의 규모가 수조원대에 달할 것으로 보고있다. 이 자금이 금융시장으로 흘러들어 산업자금으로 변모할 경우 금융시스템 회생에도 큰 힘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
초단기대책으로 한시적인 기업여신의 전면동결도 필요하다. 30대그룹 기획조정실장들도 27일 회의에서 대통령 긴급명령발동을 통해 만기도래 차입금의 상환을 연장하고 만기도래한 CP에 대해서도 다음달말까지 결제를 연장해주도록 요청했다.
은행과 종금사간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대안도 시급하다. 우량은행과 부실종금의 짝짓기만으로 구조조정을 완결할 수는 없는 일이다. 위기를 넘길 능력이 없는 금융기관을 과감히 정리하는 돌파력도 필요한 시점이다.
증시가 극도로 침체되어 있는 상황에서 증권투자를 유인하는 길을 터놓아도 실제 투자자들이 증시로 돌아올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될 만큼 투자심리가 불안하다. 이제 정부가 자금시장, 주식시장, 외환시장 등 금융시장 전체를 안정시키는 획기적인 조치를 취해야 할 시기가 왔다.
세상은 변했는데도 정책당국만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손동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