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쌍용그룹:2/중국청도쌍용 복장유한공사(한국기업의 21세기 비전)

◎중 최대 가죽의류 생산업체 부상/사회주의 문화에 경쟁 주입/1천여직원들 가족처럼 대해/올해 매출급증 50만불 흑자옛 신라인들이 신라방과 신라소를 만들었던 중국 산동반도에서도 가장 생기있는 도시 청도. 우마차와 벤츠가 함께 다니는 청도시가지에서 자동차를 타고 북쪽으로 50분을 달리면 한적한 시골풍경의 즈모(즉묵)시가 나타난다. 거리에는 매연을 뿜어대는 낡은 트럭과 자전거만이 가득하다. 잠에서 깨어난 중국의 모습과는 판이하다. 더욱이 이 곳에 한국기업이 단일 가죽의류 공장으로는 중국 최대규모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고는 믿기지 않는다. 공장 모퉁이에 있는 사무실. 짧은 머리의 여직원이 『안녕하세요』라며 어색하게 들어서는 기자를 맞이한다. 반가운 우리말에 조선족일 것이라고 짐작했지만 알고보니 모두 중국인이다. 직장이라는 곳에 처음 다녀보는 이들에게 쌍용이 가장 먼저 가르친 것이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란다. 조직생활을 해본적이 없는 이들에게 쌍용의 한가족이라는 생각을 심어주기 위해서다. 94년 본격적으로 공장 가동을 시작한 청도쌍용복장유한공사는 (주)쌍용이 1백% 투자한 기업. 이 곳에서는 한해동안 60만장의 가죽의류를 생산한다. 한국에서 들여온 가죽으로 생산된 옷들은 모두 미국과 유럽, 일본, 러시아 등에 수출된다. 공장이 문을 연 94년 매출액은 6백24만달러에 불과했다. 그러나 95년 2천1백만달러, 96년 3천1백만달러로 꾸준히 매출액이 늘어났고 올해는 5천만달러를 예상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흑자를 내기 시작해 올 50만달러의 순익을 예상하고 있다. 현재 중국에 진출한 우리나라 기업들 상당수가 초기 투자 수준이며 적자를 내고있는 점을 감안하면 대단한 성과다. 이같은 성공의 기본은 사람이다. 노동 집약적인 의류제조업의 특성상 일하는 사람을 다루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 곳에서 일하는 중국인은 모두 1천1백여명. 말이 안통하고 수십년동안 사회주의 생활에 익숙한 이들을 데리고 공장을 꾸려나간다는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김승환 총경리(사장)는 『공장 가동 초기에 대부분의 여공들은 반장, 조장 등 일을 많이하는 직원에게 더 많은 급여를 주는데 대해 이해하지 못했다』며 『누가 일을 더 많이 하든 모두 똑같은 돈을 받아야한다는 사회주의식 사고를 깨뜨리는 게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이 곳에 먼저 진출한 일부 한국 중소업체들이 현지인들에게 심어놓은 한국에 대한 나쁜 인식도 부담이 됐다. 조금 잘산다고 거들먹거리고 중국인을 무시하고 노동력만 착취한다는 인식이 그것이다. 이 때문에 쌍용 직원들은 한국인과 중국인 모두 쌍용의 한 가족이라는 생각을 심는데 무척 애썼다. 김사장을 비롯한 한국 직원들이 아파서 결근한 중국인 여공의 집에 병문안을 가기도 하고 옷을 훔치다 붙잡힌 현지인을 공안(경찰)에 부탁해 풀어주기도 했다. 집이 먼 직원들을 위해 기숙사를 짓고 때때로 소풍도 갔다. 이같은 노력은 현지인들의 생각을 크게 바꿔놓았다. 애사심을 갖게 된 것이다. 열심히 일한 사람이 더 많은 월급을 받는 것도 이제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게 됐다. 공장가동 초기에 6백여명의 현지인 직원 가운데 하루 1백여명이 결근했지만 직원이 1천1백여명으로 늘어난 지금 결근자는 하루 20여명 미만이다. 최장원 부총경리(부사장)는 『현지인들을 존중하고 우리의 문화와 현지인의 사고방식이 한데 어우러진 새로운 현지 기업문화를 만드는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현지인들의 문화에 적응하면서 우리의 기업문화를 심는 것이 세계화의 기본이라는 얘기다. 기술이전은 중국진출의 성공을 가늠하는 관건이다. 현지의 값싼 노동력만을 생각하는 「인건비 따먹기식」회사운영은 반드시 한계에 부딪힌다는 것이다. 꾸준히 임금이 오르고 있는 상황에서 기술이전을 통한 생산성 향상이 없으면 언젠가는 값싼 노동력을 찾아 또 다시 떠나야한다는 판단이다. 현재 현지 여공들의 작업능력은 우리나라의 절반 수준에도 못미친다. 사회주의 체제에서 시키는 것만 하는데 길들여진 이들에게 기술을 가르치고 생산성을 높이는게 여간 힘들지 않다. 이 때문에 이 곳에 파견된 한국인 기술자는 모두 15∼30년의 경력을 가진 베테랑들이다. 재단을 담당하고 있는 김동환 차장은 『올해만 지나면 현지 여공들의 기술수준이 거의 한국의 수준에 이를 것』이라며 『기술을 가르치면서 속을 끓이다보니 이제 중국 직원들에게 정이 들었다』고 웃는다. 91년 쌍용이 처음 중국진출을 고려할 때 회사내부의 반대도 있었다. 이미 인도네시아에 공장을 갖고 있었고 한국에서도 회사가 잘 돌아가는데 왜 중국으로 나가느냐는 것이었다. 기업을 운영하기 어려운 사회주의체제 등 중국의 생산환경이 불투명한 것도 반대 이유였다. 그러나 선박으로 서울∼부산 거리인 중국은 미래의 잠재시장일 뿐더러 새로운 생산기지로 빼어난 입지여건을 갖고 있다. 의류부문이 아니더라도 쌍용그룹이 중국시장에 뻗어나가는 기초를 닦아놓는 의미도 컸다. 이같은 기대는 그대로 맞아 떨어졌다. 쌍용의 첫 중국내 독자기업인 이 회사는 흑자라는 열매 외에도 중국인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간관계와 중국에서의 기업운영 노하우, 시장정보 등을 다져놓고 있다. 생산초기 미국과 일본, 독일 시장만 갖고 있었지만 지난해부터는 막 가죽옷 붐이 일고 있는 러시아에 「LET’S SEE」라는 자체브랜드로 6백만 달러어치를 수출했다. 쌍용은 올 9월부터 중국 내수시장에도 진출한다. 흑룡강성과 요령성 등 추운 북부지역 외에도 가죽옷의 수요가 많은 운남, 상해 등 지역을 중심으로 상권형성에 나서고 있다. 2천년대에는 생산물량의 30%를 중국내에서 소화하게 된다. 또 의류외에도 모자, 지갑 등 다양한 가죽제품을 생산할 예정이다. 특히 원자재 구매와 마케팅, 생산, 판매 등을 모두 현지에서 해결할 계획이다. 돌이킬 수 없는 개방의 문턱을 넘어선 중국에서 새로운 세기의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청도(중국)=이은우> ◎김승환 청도쌍용 총경리/“중 내수시장도 곧 공략”/대러 수출 활발… 가능성 무한 『공장 문을 연지 3년만에 현지 근로자들이 쌍용을 우리회사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어느 외국업체에서 일하는 중국인보다 열심히 일하고 작업능률도 높은 편입니다』 청도쌍용복장유한공사 김승환 총경리(45·사장)는 사회주의 체제에 길들여진 중국인들 사이에 쌍용이라는 기업이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한데 대해 강한 자부심을 나타냈다. 나라에서 정해준 일터에서 죽을 때까지 대충 일하고 능률이나 열심이라는 개념조차 없는 사람들에게 경쟁과 효율성의 기업문화를 심게 된 것이다. 『현지화와 세계화는 서로 존중하는 데서 출발한다』는 김총경리는 『현지 공장에서 당장의 이익을 위해 중국인들을 밀어부치기보다는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고 회사의 뿌리를 내리는데 촛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기숙사를 짓고 샤워실과 운동시설을 만들고 직원들의 생일 때 선물을 챙겨주는 등의 배려는 현지인들이 쌍용가족이라는 공감대를 갖게 만들었다. 이는 예상보다 빠른 회사의 성장으로 이어졌다. 그는 『세계로 눈을 돌려보면 의류제조업이 절대 사양산업이 아니다』며 『가죽제품만해도 러시아와 중국에 엄청난 수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한국내에서는 인력난, 교통난 등으로 생산여건이 어려워지고 있는 만큼 새로운 생산기지를 통해 세계 시장을 공략해야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김총경리는 지난해 수출하기 시작한 러시아 시장에 남다른 의미를 두고 있다. 러시아는 이 회사가 중국진출을 통해 개척한 새로운 시장인데다 추운 지방인 만큼 잠재수요가 엄청나다. 특히 자체브랜드로 수출하고 있어 이윤도 많다. 가죽의류가 계절에 민감한 만큼 러시아에 대한 수출은 이 회사가 1년내내 활발히 공장을 가동케하는 밑거름이 되고 있다. 러시아는 거의 연중 가죽의류 수요가 있기 때문에 일본, 미국 등에 수출을 끝낸 10월부터 이듬해 봄까지 작업물량을 확보할 수 있다는 얘기다. 『중국인들은 인간관계라는 뜻의 「콴시」를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콴시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면 될일도 안되고 콴시가 폭넓게 형성돼 있으면 안될 일 도 가능합니다』 김총경리가 이 곳에서 만들어놓은 중국 정부 관리들과의 좋은 인간관계는 회사운영의 중요한 인프라인 셈이다. 『원자재가 제때 공급되지 않아 생산라인이 멈출 때 가장 안타깝다』는 김총경리는 원자재 구매와 마케팅 등 생산의 모든 기능을 현지화할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김총경리는 『봇물처럼 중국으로 밀려오는 외국 업체들과 경쟁하려면 현지에서 생산의 모든 과정이 이뤄져야 한다』며 이같은 기반을 통해 올 9월부터 중국 내수시장에 본격 진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이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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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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