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 한국은행 총재는 9일 부동산 투기가 더욱 과열될 경우 한은이 직접적인 대응에 나설 수 있음을 분명히 했다. 내수회복이 당초 예상보다 늦어져 부동산을 안정시키는 데 특효약이라 할 수 있는 금리를 올리지는 못했지만 부동산 가격급등이 지속될 경우 한은이 취할 수 있는 수단을 적극 강구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시장에 전달한 것이다.
박 총재가 이날 언급한 미시적인 대응책은 은행대출 한도 규제를 비롯해 부동산담보인정비율을 축소하거나 대출최고한도를 제한하는 방안이다. 현행 한은법 28조 15항과 16항에는 부동산 투기에 대응해 한은이 금융기관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15항에서 금융기관 대출의 최장기한과 담보의 종류를 제한할 수 있으며 16항에서는 일정기한을 정해 금융기관 대출과 투자의 최고한도와 분야별 최고한도를 제한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금통위원들 과반수 이상이 찬성할 경우 현행 투기지역 아파트에 대해 만기 10년 미만, 40% 이하로 제한돼 있는 만기기한과 담보대출 비율을 더 낮출 수 있다. 한은은 부동산 투기에 대응해 지난 2003년 10ㆍ29조치 때 이 같은 방안을 검토한 적이 있었으나 실행에 옮긴 적은 없다.
그러나 실제로는 2002년부터 금융감독원이 은행들을 행정지도하는 선에서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을 조정해왔다. 때문에 박 총재의 발언에 대해 금감원은 부정적인 입장이다.
금감원의 한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검토해본 결과 대출이 (부동산 가격 상승에) 미치는 영향력은 미미하다”며 “현행 주택담보비율 40%도 꽤 낮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한은이 추가적으로 대출비율을 낮추더라도 부동산 가격이 낮아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박 총재 역시 당장 이 같은 조치를 취할 단계는 아니라고 강조했다. 박 총재는 “정부 정책으로도 부동산 급등세가 안 잡히면 담보인정비율 축소와 같은 조치를 검토할 수 있다”며 “다만 현 상황이 이런 조치를 취할 단계는 아니며 경기와의 상관관계를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정부가 준비 중인 종합부동산세 부과대상 확대, 1가구2주택 거래자에 대한 세무조사 등 고강도 대책이 통하지 않을 경우에 한은이 주택담보대출을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으로 예상된다.
박 총재는 5월에 이어 이달에도 금리인상을 통해 부동산 가격을 잡을 단계는 아니라는 입장을 견지했다. 그는 “부동산을 잡으려고 한은이 나서면 자칫 경제 전체를 더 어렵게 할 우려가 있다”며 “(작금의 상황에 대해) 금통위가 매우 우려하고 있고 한은도 인내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시중에 풍부한 유동자금을 묶을 방법이 없는데다 금리를 손대기에는 경제 전반에 미치는 역효과가 커 한은 입장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정책의 툴(tool)이 제한돼 있는 형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