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재벌 생보진출 허용(보험정책 앞이 안 보인다)

◎신설사 부실해소 “고육책”/인수조건 까다로워 대기업 참여 미지근/경영개선·구조조정 등 정책효과 못거둬재정경제원은 지난 2월 경제력 집중이라는 반대여론에도 불구하고 현대 대우 등 5대 재벌기업의 생보시장 진입을 허용해 주는 것을 골자로 한 보험업법 개정안을 마련, 공식 발표했다. 불과 1년전 재벌순위 6위에서 10위 사이의 대기업들에 대해 생보시장 진입조건을 완화해준 데 이어 나머지 5대 재벌들에 대해서도 시장참여를 허용해주기로 최종 입장을 정리한 것이다. 재경원은 5대 재벌의 시장진입 조건으로 ▲생보사 신설시 경영이 부실한 기존생보사 1개를 인수해야 하며 ▲인수방식으로 진출하고자 할 경우에는 부실생보사 2개를 의무적으로 인수해야 한다는 부대조건을 달았다. 당시 재경원이 경제력 집중이라는 비난여론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재벌 규제완화 조치를 발표하게 된 배경에는 곪을대로 곪은 신설생보사 부실문제를 대기업들의 자금력을 이용해 풀어보겠다는 비정책적(?) 의도가 깔려 있다. 만성적자에 허덕이고 있는 신설생보사 경영에 대그룹이 참여할 수 있도록 허용함으로써 적자해소와 경영개선이라는 난제를 동시에 풀어보겠다는 계산이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대기업들의 반응은 냉랭하기만 하다. 신규진입 허용조치 발표 이후 6개월여의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까지 생보시장 진출 의지를 구체화하고 나선 기업은 하나도 없는 실정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정부가 부대조건으로 제시한 부실생보사 1∼2개 인수요구가 재벌들의 입장에서 선뜻 받아들이기에 부담스럽다는 얘기다. 생보업계 분석에 따르면 신설생보사 하나를 인수하는데 예상되는 소요자금은 대략 2천억원 상당. 결국 생보업 진출을 위해 1∼2개 부실생보사를 인수할 경우 최하 4천억∼5천억원 이상의 자금이 소요될 수밖에 없으며, 추가적으로 향후 5년간 2천억∼3천억원의 운영자금이 더 투입될 수밖에 없다는게 대기업들의 자체계산이다. 여기에 정부가 발표한 생보사 대주주 자격요건도 대기업의 생보시장 진입을 제한하는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 4월19일 재경원장관 고시로 발표된 생보사 주주요건을 살펴보면 ▲자기자본규모 1천억원 이상 ▲총자산대비 자기자본비율 20% 이상 ▲타법인 출자비율 25%이내인 법인으로 주주자격을 제한하고 있다. 현대그룹은 현재 자기자본비율 20% 조건에 미달하는 상황이고 나머지 그룹들도 대부분 타법인출자비율 25%를 초과하고 있다. 결국 돈도 돈이지만 기본적인 진입조건조차 제대로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생보사진출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모그룹관계자는 『진입조건 자체가 까다로운데다 향후 수익성이 불투명하다는 판단에 따라 생보시장 진출 문제를 일단 유보해둔 상태』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정부방침에 따르면 부동산매각이나 증자대금 등을 통해서만 신설생보사를 인수할 수 있다』며 『이는 수익이 보장된 우량투자분을 처분해 배당도 주지 못하는 부실기업(신설생보사)에 투자하라는 얘기나 마찬가지』라고 정부정책의 비현실성을 꼬집었다. 재벌들에 대한 생보시장 진입허용 조치는 신설사 부실을 해결하기 위한 사실상의 마지막 카드라 할 수 있다. 「보험사마저 재벌들에 넘겨주려 하느냐」는 반대여론에도 불구하고 재경원이 이를 강행했던 까닭도 더 이상의 마땅한 대안을 찾기 어렵다는 상황의 절박성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러나 재경원은 실현가능성이 희박한 전제조건을 부가함으로써 그나마 어렵게 발표한 정책의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이종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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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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