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기로에 선 물가관리] 우격다짐식 가격 억누르기 소리만 요란 효과는 없었다

정부 엄포에 동결·인하<br>시간 지나면 가격 올려 되레 시장원리만 훼손<br>적자·영업이익 감소등 개별기업 피해로 이어져


"기름값이 묘하다"는 알 듯 모를 듯한 대통령의 한 마디는 관가에 매머드급 폭탄이 됐다. 담당부처 공무원들은 어느 때보다 일사불란하고도 요란하게 움직였다. 공정거래위원회의 '물가 태스크포스(TF)'는 기업 조사에 열을 올렸고 지식경제부 장관은 직접 기름값 원가계산을 하겠다고 팔을 걷어붙였다. 요란한 정부의 움직임에 관련 업계는 납작 엎드렸다. 가격을 올리려고 했다가 '눈치보기'에 들어갔다. 하지만 시간이 약일까. 업체들이 원가 인상요인을 감내할 수 없다고 아우성치며 슬금슬금 가격은 다시 올라갔다. 올 들어 정부의 물가잡기 공식은 이렇게 진행됐다. '우격다짐식' 물가억제는 소리만 요란하고 실효성은 없었다. 당장 공정위 조사와 공무원들의 압력, 여론의 뭇매가 무서워 업체들은 제품값을 유지하거나 찔끔 내렸지만 결국 시장에서의 수요와 공급으로 가격은 제자리로 돌아오게 마련이다. 정부가 이리저리 칼을 휘두르지만 이미 공고하게 자리잡힌, 복잡다단한 시장 메커니즘에 의해 결정돼온 가격은 정부의 큰소리 한 번에 하루아침에 내려갈 리 만무하다. 공정위가 연초부터 요란하게 담합 적발에 나섰지만 지금까지 내놓은 결과는 두유ㆍ반찬류ㆍ당면ㆍ참기름 같은 소비비중이 그다지 높지 않은 품목에 그치고 있다. 소비지출 비중이 높은 유류ㆍ통신ㆍ농축수산물 역시 정부에서 칼을 들이댔지만 아직까지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는 상황이다. 기름값만 해도 정유사들의 '폭리' 문제를 제기했지만 결국 근본적인 해결방법은 찾지 못한 채 정유업체가 손해 보더라도 성의를 보이라는 식의 떼를 쓴다. 최중경 지경부 장관은 "정유산업은 과점시장인 만큼 정부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면서 "한국전력이나 설탕업체들이 이익을 내는가. 적자를 보는 데도 정부에 협조하는데 국민복리를 위한 것이다. (정유업계가) 성의표시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강조했다. 시장경제원리를 무시한 가격통제식 물가대책의 또 다른 문제는 개별 기업들의 피해로 이어진다는 점. 한전의 경우 정부의 가격통제로 3년 연속 적자를 보는 바람에 해외 발전소 건설공사 입찰에서 서류심사조차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또 제당업계는 지난해 국제 원당가격 폭등에도 제품가격을 제대로 올리지 못해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21~63% 줄어드는 극심한 실적 부진을 겪었다. 연초부터 시작된 정부의 가격통제식 물가잡기의 논리는 언뜻 듣기에는 수긍할 만했다. 물가상승의 원인이 국제 원자재 가격 급등과 구제역, 한파로 인한 농축산물 공급축소 등 일시적 국지적인 요인에 있는 만큼 다소 마찰음이 생기더라도 공급 측면의 부당한 가격인상을 막고 기대 인플레이션을 낮추겠다는 게 정부의 취지였다. 그러나 결국 물가는 물가대로 못 잡고 시장경제원리만 훼손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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