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근로복지공단 국장이 주경야독으로 대학을 수석졸업했다.
백만종(56) 근로복지공단 보험급여국장은 최근 전북 군산 호원대 후기 졸업식에서 평점 4.5점 만점에 4.35점을 얻어 학사모를 쓴 100여명 가운데 수석을 차지, 총장상을 받았다. 만학도로 학문의 꿈을 접지 않은 백씨의 성적은 7학기 만에 20대 학생들보다 뛰어나 더욱 빛을 발했다.
“졸업장을 받는 쓰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어요. 30여년 동안 가슴 한구석에 깊게 자리한 꿈이 이뤄졌기 때문일 겁니다.” 그는 올 2월까지 근로복지공단 군산지사장으로 근무, 30여명의 부하직원을 이끌면서 ‘낮에는 직장인, 밤에는 대학생’으로 학업을 계속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지난 69년 전주고를 졸업한 뒤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대학진학을 포기한 백씨는 ‘대학을 가겠다’는 꿈을 한번도 접어본 적이 없었다. 철도청을 시작으로 공직에 발을 들여놓은 뒤 78년부터 노동부에서 근무를 하면서 3번이나 방송통신대에 등록을 했지만 토ㆍ일요일 없이 노동현장을 돌며 애로사항을 청취하는 일을 맡아 시험 볼 틈을 내지 못해 매번 중도 탈락하는 아픔을 맛보기도 했다.
95년 근로복지공단 창립과 함께 자리를 옮긴 백씨는 대학진학의 꿈을 펼치기 위해 지방근무를 자청, 2001년 군산지사장으로 발령받은 뒤 산업체 인력이 다니기 좋은 호원대 관광경영학과에 응시해 합격했다.
“꿈 속에서도 잊지 못하던 대학생활이라 한 순간도 헛되이 흘려보내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썼습니다. 배움이 너무나 즐거워 종종 끼니는 걸러도 학교는 한번이라도 빠지면 너무나 서운했어요.” 그는 2~3달에 한번꼴의 공무 출장을 제외하고는 언제나 강의실 맨 앞줄에 앉아 오후6시30분부터 4~5시간씩 수업을 받았다. 제주도로 1박2일 출장을 갔다가도 첫날 오후 회의를 마치고 비행기를 타고 와 야간시험을 본 뒤 다음날 아침 다시 제주도로 되돌아갈 정도였다.
휴일이면 경기도 성남과 서울시 가리봉동 등의 외국인 노동자상담소를 8년째 찾아 자원봉사활동에도 열성적인 그는 “퇴임 후에는 외국인 근로자들의 어려움을 보살피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