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돈 단기부동화… 경제왜곡 우려

■ '실질금리 마이너스 증후군' 확산기업등 실물 돈가뭄속 사행산업엔 돈몰려 "저금리가 구조조정과 병행되지 않을 경우 '정책적 함정'에 빠질 수 있다." 이근영 금융감독원장이 최근 한 강연에서 한 말이다. 불행하게도 현재 사회 곳곳에 나타나고 있는 모습을 보면 그가 언급한 정책적 함정이 현실화되고 있는 조짐이 역력하다. 실질금리가 마이너스인 초저금리 시대가 뿌리를 내리고 있지만 돈의 흐름은 왜곡된 채 빈민층과 노령층의 소외감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자금이 실물로 유입되기는커녕 카지노 등 사행산업으로 빠져들어 한탕주의가 만연하고 있다. 반면 시중에 떠도는 돈을 빨아들여야 할 주식시장은 경기불황으로 혹한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김대중 대통령까지 나서 '주식갖기 운동'을 제창하고 있지만 꽁꽁 얼어붙은 투자심리는 좀처럼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소비심리마저 얼어붙어 있다. 경제 전문가들은 실질금리 마이너스 시대가 이처럼 지속될 경우 경제구조 자체를 왜곡시킬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 돈 갈 곳 몰라 '우왕좌왕' 저금리는 기업들이 싼 자금을 조달, 이 자금으로 저비용으로 제품을 만들어 수익성을 높일 때 그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상황에서는 저금리의 힘이 전혀 발휘되지 못하고 있다.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돈을 쓰려는 기업들은 갈수록 줄어들고 정작 돈이 필요한 기업들은 장기성 자금이 모자라 돈 구경도 못하는 모순이 발생하고 있는 것. 자금의 단기부동화는 저금리의 선순환 고리가 형성되는 데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자금의 부유화현상은 은행예금에서 엿볼 수 있다. 지난달 은행예금 증가액 7조4,662억원 중에서 만기 6개월 미만의 단기예금 비중이 94%에 달할 정도다. 이 와중에 은행권이 지난 96년에 한시적으로 판매했던 비과세가계저축 중 무려 15조원의 만기가 올 연말까지 도래, 시중자금의 단기 부동화현상은 더욱 극심해질 전망이다. ◆ 금융회사ㆍ연기금 등 부실우려 '증폭' 생명보험사들의 경우 금리가 크게 떨어지면서 자산운용을 통해 얻는 이익(자산이익률)은 급격히 떨어지고 있으나 고객들에게 내줘야 하는 돈(평균 예정이율)은 큰 변동이 없어 역마진의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경영난을 우려한 상당수 보험사들은 결국 인원감축 등 강제 내부구조조정에서 길을 찾고 있다. 연기금 역시 이자수입 감소로 부실화에 따른 연금수입 하락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으며 이자수익에만 거의 의존하는 복지재단과 문화기금ㆍ장학재단 역시 운영난 및 공익사업의 축소가 불가피해지고 있다. ◆ 서민들 이중, 삼중의 '고통' 이자소득으로 살아가야 하는 퇴직자나 고령자들의 처지는 더욱 딱하다. 정기예금금리가 최저 연4.5%까지 떨어지면서 1억원을 은행에 맡기면 세금 등을 떼고 한달에 30만여원을 받는 게 고작이다. 물가상승률까지 감안하면 사실상 원금을 까먹고 있는 셈. 대출금리도 하락했다고는 하지만 신용도가 낮아 차등금리를 적용받아야 하는 이들 서민에게는 혜택이 거의 없다. 여기에 금융회사들의 정상화에 투입된 천문학적 규모의 공적자금에 포함된 세금까지 고려할 경우 대다수 국민들은 이중, 삼중의 고통을 감내하는 수밖에 없다. ◆ 생활안정예금ㆍ부동산신탁 등 '인기' 이런 상황에서 정기예금보다 조금이라도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새로운 금융상품들이 등장, 때아닌 특수를 누리고 있다. 주택은행이 이달 판매에 들어간 '생활안정정기예금'은 시판 열흘 만에 574계좌, 268억원의 실적을 올렸다. 연6% 안팎의 '고금리(?)'가 이자소득 외에 별다른 수입원이 없는 이자생활자들을 끌어들인 것이다. 조흥ㆍ한빛ㆍ외환ㆍ국민ㆍ하나 등 대부분의 시중은행들이 올들어 시판했던 부동산투자신탁 역시 판매 당일 매진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쳐다보지도 않았을 최고 10% 안팎의 수익률에도 부동자금들이 달려들기 때문이다. ◆ 사행성 오락산업 '급팽창' 돈이 기업이나 부동산 등 실물로 흐르지 않고 카지노나 경마ㆍ경륜 등 사행성 오락산업으로 쏠리는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은행예금에 맡기자니 쥐꼬리만한 이자 밖에 손에 쥘 수 없고 그렇다고 주식에 투자하자니 늘 마음이 불안한 처지라 차라리 '대박의 꿈'을 찾아보자는 속셈이다. 실제 국내 유일의 내국인 출입 카지노인 강원랜드는 일약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떠올랐다. 강원랜드는 올 상반기(1~6월) 결산 결과 전국 각지에서 모인 41만여명이 하루평균 12억4,000만원의 돈을 뿌리면서 2,246억원의 매출을 올렸으며 각종 세금 등을 공제한 후의 당기순익도 1,100억원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반영, 국내 사행성 오락산업의 시장규모도 급팽창하고 있다. 경마ㆍ경륜ㆍ카지노ㆍ복권 등 사행산업의 지난해 시장규모는 총 6조1,771억원으로 전년보다 45.8%나 불어났고 올들어서는 지난해 성장속도를 훨씬 추월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진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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