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삼성그룹<헝가리 SEH>(한국기업의 21세기 비전)

◎6년째 흑자 경영에 지역발전도 공헌/동구 TV점령 “사령부”/러닝 페스티벌·축구대회 등 독특 홍보 주효… “생산능력 2배” 산학손잡기 추진도해외진출 기업의 현지화 성공 여부를 가늠하는 잣대는 무엇일까. 흑자 경영, 현지설비 증설 및 그에따른 고용 확대, 기업 인지도 확산등이 현지화 성공의 1차적인 판단기준이 될 수 있다. 나아가 현지 활동을 통해 지역사회에 대한 공공적 기여까지 실천에 옮기고 있다면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다. 이런 관점에서 삼성전자 헝가리법인(SEH)은 국내 기업의 해외투자 진출사에서 몇 손가락안에 드는 성공사례로 꼽힐만하다. 지난 88년 9월 삼성전자는 EU(유럽연합)시장 개척을 위한 동유럽 교두보 구축사업의 하나로 헝가리 국영 오리온 컬러TV사와 50대50의 합작사 설립에 관한 투자의향서를 교환했다. 한국이 동유럽 국가중 처음 헝가리와 상주대표부 상호설치 협정에 서명한 것이 88년 8월말이고, 대사급 외교관계 수립이 89년 2월이니 삼성전자의 헝가리 진출이 당시로선 얼마나 모험적 도전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SEH는 부다페스트에서 동쪽으로 70km쯤 떨어진 야스페니사루시 입구에 대지 3천평 건평 500여평 규모의 아담한 적벽돌 공장을 차려 컬러TV 20만대(연산) 규모로 90년 4월 첫 생산을 시작했다. 처음엔 반조립 상태의 회로물을 캐비넷에 결합해 출고하는 수준의 세미녹다운(SKD) 방식이었다. 하지만 SEH는 진출 첫해부터 헝가리 내수시장의 10%를 잠식하며 단번에 흑자를 기록하는 쾌조의 출발을 보였다. SEH는 91년5월 파트너인 오리온사 요청에 따라 잔여 지분을 모두 인수, 자본금 2천80만달러 규모의 1백% 단독투자 법인이 됐다. 이후 동유럽국가중 주요 수입선이던 유고슬라비아가 내전상태로 돌입한 93년중 약간 고전한 것을 빼고는 매년 흑자행진을 되풀이한 끝에 95년엔 납입자본금의 8%를 웃도는 이익률을 보였다. SEH는 생산능력을 현행 연산 24만대에서 40만대로 늘리고 조립라인도 기존의 고정 컨베어에서 자체 구동식 컨베어로 바꾸는 설비 확장공사를 지난 3월 착공, 연말께 완공을 목표로 한창 공사를 진행중이다. 새 설비는 수요에 따라 14­29인치까지 생산모델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다. SEH는 또 내년초 자체적인 품질관리(바코드) 시스템을 도입하고 공장내에 플라스틱 사출공장을 준공할 예정이다. 새 설비가 완공되는 10월말께면 현재 1백40명인 현지인 직원외에 50여명을 추가 고용할 계획으로 현재 라인에 참여시켜 연수교육중이다. 흑자 경영과 설비증설, 고용 확대등이 해외진출 법인의 현지화 여부를 가름하는 하드웨어적 실적이라면 SEH는 기업의 이미지 제고와 사회적 기여라는 소프트웨어 부문에서도 발군의 솜씨를 보이고 있다. 헝가리어의 발음구조상 영어의 「S」음은 「SZ」로 표기된다. 또 A가 「아」로 소리나려면 A자의 머리부분에 반드시 액센트표기가 붙어야 한다. 그런데 헝가리에선 웬만한 택시기사나 어린이들도 「삼성」을 거침없이 「SAMSUNG」로 읽는다. 삼성의 기업·브랜드 이미지가 이처럼 뿌리를 내리는 데는 다각적인 노력이 집적된 결과다. 영국 런던에 위치한 삼성전자의 유럽본부는 전유럽 대륙국가를 상대로 영어 자막의 기업이미지광고를 펼치고 있다. 그런데 헝가리는 동유럽국가중 서구문화와의 교류 접촉에서 단연 앞서는 나라다. 일반가정에선 위성수신을 통해 EURO­SPORT나 SKY­NEWS를 보거나 CNN·NBC 등 미국 TV를 시청하면서 자연스레 삼성의 광고에 접한다. SEH는 국립실내체육관인 부다페스트 스포츠홀의 원형 돔벽에 60도 간격으로 6개의 대형 로고광고를 부착했다. 이 체육관은 매년 1월 세계 실내 육상선수권대회를 개최하는 장소로 유명하다. 대회기간중 TV가 체육관 전경을 비출때마다 뉴스나 스포츠중계 프로에선 자동적으로 삼성로고가 비춰진다. 물론 SEH는 3년째 실내육상대회를 스폰서하고 있다. 스포츠홀 뒷편에 5만명을 수용하는 야외음악당이 있는데 지난해 록그룹 롤링스톤스가 코카콜라 후원으로 헝가리콘서트를 진행할 당시 TV중계 카메라에 스폰서회사보다 삼성의 로고가 더 많이 잡히는 「얌체 광고」효과를 본의 아니게 누리기도 했다. 광고를 포함한 지역사회 홍보비로 SEH는 연간 2백만달러를 쓴다. 올해 연매출 목표가 8천52만달러, 납입자본금이 2천80만달러이니 굉장한 비중의 지출이 아닐 수 없다. SEH는 각종 문화, 체육, 지역사회 개발 분야등에 광범한 지원활동을 벌이고 있다. 올해 아틀랜타 올림픽에 참가한 헝가리 대표팀을 공식 후원했고 프로 아마를 막론하고 4천여개 팀이 참가한 삼성컵 오픈축구대회를 주최, 9월부터 예선전을 벌였다. 헝가리 프로축구 1부리그 16개팀의 하나인 바쯔 삼성팀과 최상급 실내악단의 하나인 「바이너 사스」를 각각 후원중이다. 바이너사스 실내악단은 지난해 5월 SEH가 바이오TV 출시를 맞아 딜러 2백여명을 초청, 다뉴브강 유람선상 홍보쇼를 벌일 때 온종일 연주 지원을 해주기도 했다. SEH 공장이 위치한 야스페니사루시는 인구 5만명 규모의 소읍이다. 그런데 지난 93년 4월 괸츠·알파드 헝가리대통령이 공장을 방문한 뒤 야스페니사루를 시로 승격시켰다. 이후 야스페니사루시는 SEH와 다양한 협력사업을 공동 추진한 끝에 최근 공장옆 시유지 1만㎡를 무료 기증, 지역회관을 지어주고 SEH입구까지 버스노선을 개설해 줄 정도다. SEH가 헝가리에서 물의를 빚을만큼 성공한 지역사회 행사로는 단연 지난해 9월 부다페스트와 전국 19개 카운티에서 15만여명이 참가한 「삼성 러닝페스티벌」이 꼽힌다. 남녀노소가 쏟아져나와 삼성로고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10km를 함께 달린 이 대회는 인구 5만의 소읍서 무려 7천여명이 참가하는등 북새통 속에 화제를 만발했다. 삼성전자 본사는 SEH의 이 대회를 대표적인 현지화 성공사례로 선정, 중부유럽 전역으로 대회규모를 늘리기로 했다. SEH는 노벨상 수상자를 세계에서 2번째로 많이 배출한 부다페스트공과대학측과 올들어 산학협동 협력사업을 추진중이며 빠르면 연내 협약체결 등 가시적 성과를 기대한다. 구사회주의 국가의 기업답지 않게 SEH에는 노조가 없다. 현재 헝가리인 직원이 공장 1백40명, 판매법인 72명이나 이들의 이직률은 0%에 가깝다. 전직 공고교사인 작업반장 안탈·이스트반씨는 『SEH가 외국업체인 데다 노동법을 잘 지키므로 직원들이 근로조건에 만족한다』며 『지난주 가족들을 데리고 와 회사소개를 했는데 구석구석 둘러본뒤 아빠를 자랑스러워했다』고 말했다. SEH에 대한 취재를 마친 뒤 호텔에 돌아와 프론트여직원에게 『삼성을 아느냐』고 물었더니 곧장 『아, 컬러TV 회사』라고 답했다. 괜히 기분이 좋아져 다시 『삼성이 어느 정도 유명하며, 삼성제품의 가격은 비싼 편인가』라고 물었다. 여직원의 대답은 『미디엄. 미디엄. 아임 쏘리』였다. SEH의 노력이 그동안 매우 용의주도했지만 현지화의 완성까지는 아직도 여전히 많은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다는 냉엄한 현실을 느끼는 순간이었다.<야스페니사루(헝가리)=유석기> ◎인터뷰/이만식 /현지 근로자 기술자부심 대단… 필립스 등 추격맞서 「고객잡기」에 총력 SEH 이만식 법인장은 현지화 노력이 빠르게 착근한 비결에 대해 『무엇보다 현지 직인들의 자발적 참여와 노력을 유도한 때문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법인장은 『한국서 파견된 주재원은 공장 4명, 판매법인 2명 등 모두 6명뿐이다』면서 『기업이미지 제고에 멋진 아이디어로 주목받은 러닝페스티벌이나 유람선상 딜러쇼도 모두 현지 직원이 기획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지 직원들의 업무 숙련이나 성실도는 어느 정도인가. ▲헝가리인들은 동구에서도 꼽힐 정도로 손재주가 좋다. 남부 갈로차지역의 자수공예품은 유럽에서 성가가 높다. 크리스탈세공품도 체코 보헤미아산과 쌍벽을 이룬다. 불량률은 2%미만으로 거의 한국수준이며 내년중 시간당 생산대수로도 맞먹는 수준을 달성한다는 게 목표다. 삼성전자의 해외법인 가운데 CRT를 자체 조립하는 나라는 헝가리뿐이다. 기술적 자부심이 대단하다. ­부품 현지화 비율은. ▲현재 가격기준으로 70%를 웃돌고 있다. 독일 베를린의 삼성전관서 CRT부품을, 동독 코트부스의 삼성코닝서 유리제품을, 폴투갈 삼성전기서 배선 및 소재를 각각 들여온다. 팩시밀리등 자체서 생산치 않는 제품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는 유럽본부 보세창고에서 육로로 들여와 시판중이다. 내년중에는 현지화율 80%를 달성할 계획이다. ­현지 정부와의 협조관계는 원할한가. ▲체육·문화행사에 대한 후원을 통해 헝가리출신 IOC(국제올림픽위원회)부위원장 팔슈미트씨씨는 신청만 하면 수시 면담이 가능할 정도가 됐다. 체육부나 상공부등의 고위관료들도 자주 만나 애로사항을 전달한다. 지난해 헝가리 국세청이 상당수 업종에 금전등록기 설치를 의무화키로 했다는 정보를 비교적 일찍 입수, 대당 4백­5백달러짜리 등록기로 1천만달러이상 매출을 기록하는 특수를 누리기도 했다. ­헝가리내 주요 경쟁상대는. ▲SEH는 자체 생산중인 컬러TV외에도 판매법인을 통해 VCR·전자렌지·오디오·청소기등 다양한 제품을 시판중이다. 컬러TV·VCR·전자렌지등은 이미 지난 93년부터 헝가리 내수시장 점유율 1위를 고수하고 있다. 필립스가 뒤쫓아 오는 중이며 일본회사들은 아직 시장진출이 미미한 편이다. 현재 헝가리내 모든 전시장에서 삼성제품이 「눈높이」에 진열되도록 유도, 고객들이 보다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노력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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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석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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