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 12월 14일] <1575> 주신구라


'주신구라(忠臣藏).' 연말연시면 으레 일본의 TV에 등장하는 특집극 소재다. 내용은 주군을 잃은 사무라이 47인의 복수극. 각급 학교의 교과서에도 빠짐없이 나온다. 이야기의 발단은 이렇다. '시골의 다이묘(영주) 아사노가 수도인 에도에서 다른 다이묘인 기라에게 상처를 입혔다.' 아사노가 분개한 이유는 술수에 빠져 격식과 예법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하게 돼 위신을 잃었다고 판단했기 때문. 아사노는 술책을 꾸민 기라의 얼굴에 칼자국을 남겨 무사로서 위신을 세웠으나 '할복' 명령을 받았다. 쇼군 앞에서 칼을 뽑았다는 이유에서다. 아사노가 죽자 로닌(浪人·떠돌이 무사)이 될 처지인 가신 300여명이 모였다. 우두머리 격인 오이시는 '당장 기라를 치자'는 사무라이들을 만류하고 은거에 들어갔다. 적의 감시에서 벗어나고 끝까지 함께 갈 동지를 가려내기 위해서다. 오이시가 고른 47명은 '주군과 의리를 저버린 자'라는 수모 속에서 시간을 기다렸다. 군자금을 마련하려 행상에 나서고 가족을 버렸다. 어떤 로닌은 여동생을 원수인 기라에게 하녀 겸 첩으로 바쳤다. 1년 9개월 동안 칼을 갈아온 47인의 로닌이 거사에 나선 것은 1702년 12월14일 밤. 원수인 기라의 에도 저택을 습격해 주군의 원수를 갚았다. 이튿날 아침 원수의 수급을 쳐들고 주군의 묘소로 행진하는 로닌들에게 에도 시민들은 박수 갈채를 보냈다. 복수에 성공한 로닌들은 쇼군의 할복 명령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일본인들에게는 영원히 살아 있다. 국가적으로 47인의 로닌이 재평가된 것은 메이지 유신기. 무사도의 전형이자 신시대의 일본인이 본받아야 할 상징으로 칭송 받고 교과서에 올랐다. 호전적 일본과 집요하게 기술을 개발하고 시장을 개척하는 일본기업에도 '주신구라'라는 공통의 인자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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