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는 컴퓨터의 역할을 들먹이는 것조차 구태연한 일이다. 어느새 컴퓨터는 산업이며 모든 일상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80년대 초 컴퓨터가 우리 생활에 처음 등장했을 때 다양한 기능과 역할이 사회시스템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 예견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컴퓨터의 실용화가 본격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하던 때 이 `신비의 기기`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1982년 12월 롯데백화점 본점에서 개점 3주년을 기념해 사무기기 자동화 전시회가 있다는 것을 알고 시간을 내서 참관했는데 마침 서경전자에서 몇 가지 전산화 프로그램을 실연하고 있었다.
당시 서경전자는 컴퓨터를 조립ㆍ판매하고 학원도 운영하는 컴퓨터 회사였다. 평소 호기심은 컸지만 컴퓨터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던 나는 안내를 맡고 있는 담당자들에게 이것저것 궁금한 것을 물어봤다. 그러나 복잡한 전시장에서 궁금증에 대한 답을 시원하게 들을 수는 없었다.
마침 서세원이라는 젊은 직원에게 전시장이 몇 시에 문을 닫는지, 저녁 시간에 뭘 하는지, 한번 만날 수 있을지 물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부터 전시가 끝나는 날까지 거의 매일 저녁에 만나 식사를 하고 술잔도 기울이면서 컴퓨터의 궁금증을 물었다. 서경전자에서 운영하는 컴퓨터 학원을 수석으로 수료했다는 그는 내가 묻는 말에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당시 예림당은 서점에서 전화나 우편주문을 받고 계산서를 작성하는 여직원이 4명이나 있었지만 하루 종일 정신없이 바쁜 상황이었다. 지사나 대리점 거래가 미미했고 전국의 서점과 직거래를 했기 때문에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전시회가 끝난 뒤 서세원을 다시 만난 나는 예림당의 업무 전산화를 위해 프로그램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자신 있다고 말했다. 그렇게 해서 도서의 입ㆍ출고관리, 서점별 입출금 관리 등 출판업무 전반을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는 프로그램 개발이 시작됐다.
우리에게 필요한 전산 프로그램은 신설동에 그 작업에만 몰두할 수 있는 개발실까지 마련해 주고도 1년6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인건비만도 당시 우리회사 영업 책임자보다 배 이상 투입되었다.
1984년 7월 워드용이나 컴퓨터나 다름없던 8비트짜리 컴퓨터를 정리하고 새로 나온 286 컴퓨터 4대와 프린터 등을 구입하고 프로그램을 깔아 업무를 전산 처리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비록 작은 분야이긴 하지만 국내 출판사로서는 업무를 전산화 시킨 효시가 아닐까 싶다.
컴퓨터에서 뽑아낸 거래명세서를 서점에 보내자 서점에서는 예림당이 일일이 손으로 기록하는 대신 타이핑이나 매한가지 컴퓨터로 그저 깔끔하게 찍어낸 것인 줄 알았다. 그게 아니고 프로그램에 의해 코드를 입력하면 출고와 재고량은 물론 서점별 거래내역이 한눈에 파악된다고 하자 깜짝 놀라며 감탄하던 일이 지금도 기억난다.
예림당의 업무 전산화는 출판계의 화제가 되었고 여러 출판인들이며 실무자가 우리 회사로 찾아와 직접 보기도 하고 간접적으로 문의를 해왔다. 나는 가까이 지내는 출판인들에게 전산화의 효율과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리고 프로그램을 개발한 사람을 주위에 두루 소개해 주었다. 서세원은 예림당 프로그램을 출판사 특성에 맞게 조금씩 수정해 싸게 판매했다. 내가 투자한 개발비의 10분의 1도 안 되는 가격이었다. 예림당의 경우 남보다 먼저 업무 전산화를 이끌다 보니 경제적인 부담은 엄청나게 컸다. 그러나 남보다 한 발 앞서 나간다는 성취감에 대한 정신적 보상이 얼마나 큰지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아시아태평양출판협회장ㆍ예림 경기식물원이사장ㆍ전(前)대한출판문화협회장
<나춘호 예림당 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