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보 기재부 차관보는 22일 서울 상공회의소에서 최 경제부총리와 경제5단체장의 간담회 이후 별도 기자 설명회를 열고 "배출권거래제 등은 현행법상 내년 1월 시행하도록 돼 있다"며 "제도의 취지는 살리되 기업의 부담이 최소화될 수 있는 방향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기업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과징금제도 등은 손질하겠지만 배출권거래제를 시행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문제는 기업 투자가 늘어나면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 배출도 증가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기업이 설비투자에 나서 생산 라인을 증설할 경우 에너지 투입도 늘어 온실가스 배출이 증가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온실가스 배출이 늘면 그만큼 배출권도 구입해야 해 '투자확대=부담증가'의 투자함정에 빠진다. 더욱이 시장에서 거래되는 배출권 물량이 부족할 경우 정부에 과징금을 물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투자를 확대하면 다양한 인센티브를 부여한다고 하면서도 뒤로는 준조세 성격의 과징금을 걷는 모순의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앞으로 3년 동안 2억8,000만톤의 배출권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기업 투자를 늘리면 배출권 매입 부담이 커지게 된다"며 "과징금과 인센티브 중 어느 쪽이 더 유리할지 계산을 해봐야 할 처지"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기업 투자에 따른 배출권 부담 확대는 없는 방향으로 제도를 설계하겠다는 입장이다. 정부 관계자는 "투자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 증가는 상쇄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온실가스 배출권 가격이 톤당 1만원을 넘길 경우 정부가 비축물량을 풀어 기업 부담을 낮추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때문에 정부 안팎에서는 배출권거래제 시행을 내년 이후로 연기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기업 부담을 낮추는 방향으로 제도 재설계에 들어가면 상당한 시일이 소요돼 결국 법시행 시기가 자연스럽게 뒤로 밀릴 수 있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