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외통수를 자초한 경제사령탑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그동안 정치권에서 부드러운 조율사로 꼽혀왔다. 현 정부 출범 후 대통령실에서 정무수석ㆍ국정기획수석 비서관 등을 맡았을 정도로 여야를 넘나드는 소통능력을 발휘해왔다. 그런 박 장관이 9일 취임 100일째를 맞아 리더십의 시험대에 서게 됐다. 주요 경제정책의 기조를 놓고서 야권을 설득하는 것은 고사하고 여권 내 정책 파트너들과 호흡을 맞추는 데도 차질이 빚어지고 있는 탓이다. 정부가 최근 감세를 돌연 철회하기까지의 과정이 단적인 사례다. 박 장관은 최근까지도 국회 출석이나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감세 정책에 양보는 있을 수 없다"고 호언장담해왔다. 임태희 대통령실장이 감세 연기를 시사하는 발언을 함으로써 사실상 중재에 나섰으나 박 장관은 감세 일정에 변화는 없다고 못박았다. 하지만 야권은 물론이고 한나라당마저 감세 철회를 고집하는 상황을 고려한다면 박 장관의 발언은 애초부터 지켜지기 힘든 원칙이었다. 결국 재정부는 지난 7일 법인세ㆍ소득세 추가 감세를 철회했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요즘 정치적 지형을 감안할 때 박 장관은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싸움 속으로 스스로 빠져드는 외통수를 자초했다"고 평가했다. 문제는 앞으로 박 장관이 헤쳐나가야 할 정치ㆍ경제적 쟁점들이 첩첩산중이라는 점이다. 박 장관은 복지예산 증액을 요구하는 한나라당과 내년도 예산안을 절충해야 한다. 아울러 가계부채, 저축은행 사태, 경기불안에 따른 통화정책 등을 놓고 금융위원회나 한국은행과도 손뼉을 맞춰야 한다. 야권을 설득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국회 비준의 활로를 뚫어야 한다는 당면과제도 박 장관 앞에 놓여있다. 이런 상황에서 박 장관이 지나치게 원칙론만을 고수해 전술적 유연성을 잃어버릴 경우 경제 사령탑으로서의 컨트롤 능력과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하기 어렵다. 최근 주요 선진국들의 경제위기는 한마디로 '리더십의 위기'다. 시장이 정부의 정책 조율 능력과 정치력을 의심하는 순간 미약한 위기 조짐도 순식간에 대형사고로 이어진다는 점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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