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쇼트펀드의 인기가 날로 커지면서 금융투자업계에도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매수' 일색이던 증권사의 종목 투자의견이 바뀌고 있는 것. 전문가들은 롱쇼트펀드 시장이 성장하면서 매수 의견뿐만 아니라 매도 의견에 대한 기관투자가의 수요가 커지고 있어 매도 보고서가 많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각에서는 기관투자가의 수요가 커지고 있지만 매도 보고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해당 기업의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대형주에 대한 매도 보고서가 크게 늘기는 힘들다는 의견도 나온다.
18일 한화투자증권은 현대미포조선에 대해 올해 업계에서는 처음으로 매도 보고서를 냈다. 정동익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현대미포조선이 주력으로 삼는 5만톤 내외의 상품운반선 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며 "시장점유율 하락뿐만 아니라 선가 인상이 힘든 데 따른 수익성 악화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장 연구원은 "현대미포조선은 올 4·4분기까지 분기별로 영업손실이 지속될 것"이라며 기존 15만5,000원으로 제시했던 목표주가를 13만원으로 하향 조정하고 투자의견도 '마켓퍼폼(중립)'에서 '매도'로 변경했다.
한화투자증권은 매수·아웃퍼폼·마켓퍼폼·언더퍼폼 등 4단계로 분류되어 있던 투자 의견을 매수·중립·매도로 단순화하면서 중립과 매도 의견이 차지하는 비중을 40% 수준으로 관리하기로 했다.
안성호 한화투자증권 기업분석파트장은 "우리나라 경제가 과거 고성장 시기를 지나 저성장 국면에 진입하면서 매수 중심의 투자의견 제시 관행에도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투자자보호 관점에서 더 이상 애매모호한 투자의견을 지양하고 적극적인 의견을 내놓을 방침"이라고 전했다.
우리투자증권·교보증권·유진투자증권도 매도 보고서를 늘릴 방침이다.
이창목 우리투자증권 에쿼티리서치센터장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기업 분석 보고서 상 매수 비중을 점차 줄이면서 보유와 매도가 전체 보고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5% 수준까지 올라왔다"며 "매도 보고서를 내면 해당 기업이 불편해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앞으로도 투자자 이익 차원에서 보고서의 객관성을 높여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변준호 유진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역시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해당 주식을 투자한 기관투자가나 해당 기업 등을 고려하면 구조적으로 매도 보고서를 내기 힘들지만 투자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팔 종목을 선별해 매도 보고서 비중을 높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증권사들이 이처럼 매도 보고서 비중을 높이겠다고 나서면서 내놓는 이유는 투자자 보호지만 실제로는 기관투자가의 매도 보고서에 대한 수요 때문이라는 해석에 무게가 실린다. 주가 하락이 예상되는 종목에 대해 공매도 전략을 구사하는 롱쇼트 펀드의 수탁액이 2조원에 달하면서 성장세를 키워가고 있기 때문이다.
김영준 교보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국내 주식시장이 예전처럼 꾸준히 상승하기 힘든 국면에 진입하면서 시장의 방향과는 상관없이 절대수익을 추구하는 롱쇼트 펀드들이 최근 큰 인기를 끌고 있다"며 "단순히 사라, 팔아라가 아니라 단기적인 악재가 있을 경우 트레이딩 관점에서 접근하라는 단기 매수 의견을 포함한 쇼트전략의 추천 비중을 30% 이상까지 늘려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기관투자가의 수요만으로는 대형주에 대한 매도 보고서가 크게 늘기는 힘들다는 의견도 나온다. 목표치를 정해놓고 매도 보고서를 늘리겠다는 것은 시가총액이 미미한 일부 종목에 집중될 뿐이라는 얘기다.
한 중형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증권사 리서치센터 입장에서는 유휴 자금을 많이 가진 기업이 기관투자가 못지않게 큰 고객"이라며 "특히 투자은행(IB) 시장이 커지면서 오히려 기관투자가보다 상장사들의 영향력이 더 커졌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상황에서 매도 보고서 비중의 목표치를 정해 놓으면 결국 돈벌이와 크게 상관없는 일부 소형주들에 대한 보고서만 늘어날 것"이라며 "근본적으로 대형주에 대한 매도 의견이 늘어나기 위해서는 증권사의 분석 보고서를 컨설팅 차원에서 받아들이는 기업의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