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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한라산을 끼고 조성된 1100도로. 지난 21일 이 도로의 정점인 1100휴게소에 내려 도로 옆 풀이 우거진 숲으로 향했다. 무성하게 자란 풀들을 헤치고 나가길 30여분. 숲의 끝자락에 다다르니 넓은 평지가 한눈에 들어왔다. 각종 이끼류와 풀들이 듬성듬성 보이고 커다란 물웅덩이가 우측 끝자락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이 제주도 사람들이 '숨은 물뱅듸'라 부르는 습지이다. 제주 방언으로 뱅듸는 벌판이니 육지 말로 풀이하자면 '숨어 있는 물 벌판'이다.
숨은 물뱅듸는 지표수가 흔하지 않은 한라산 중턱에 형성된 습지이다.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세계적으로 드물게 산지에 형성된 습지라는 점을 인정받아 21일 람사르습지로 신규 등록됐다. 람사르협약사무국은 전 세계 168개국 2,193곳의 습지를 생물 다양성 보전을 위해 중요하다고 판단, 람사르습지로 지정·관리하고 있다. 이번에 등록된 숨은 물뱅듸의 면적은 1㎦ 남짓된다. 2010년 등록된 고창·부안 갯벌(45.5㎦)과 비교하면 규모가 상당히 작지만 이곳은 다양한 생태계의 보고이다.
멸종위기 야생생물Ⅱ급인 식충식물 자주땅귀개, 벌매를 비롯해 두견, 한라부추, 물장군 등 490종 이상의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물웅덩이 주변에는 송이고랭이 군락이 자리 잡고 있고 습지 주변에는 삼나무 군락 등 천연림이 형성돼 있다. 8월이면 자주땅귀개가 습지에서 연분홍색 꽃을 피워 장관을 이룬다는 것이 현지 전문가의 설명이다. 오홍식 제주대 과학교육과 교수는 "숨은 물뱅듸는 사람들의 접근이 어려워 습지의 원형이 잘 유지돼 있다"며 "물웅덩이·습초지·낙엽활엽수림대 등 다양한 식물이 자랄 수 있는 환경을 갖고 있어 종의 다양성 측면에서 가치가 특히 높다"고 설명했다.
환경부는 숨은 물뱅뒤의 생물 다양성 보전을 위해 일반인들에게 공개하기보다는 학술연구와 자연 보전 목적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최종원 환경부 자연정책과장은 "우리나라에 람사르습지가 21곳 지정돼 있는데 일부만 생태관광 코스로 개발했고 일부는 자연 보전 위주로 관리하고 있다"며 "숨은 물뱅뒤는 우선 자연 보전과 학술조사 목적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22일 제주도 동백동산습지에서 윤성규 환경부 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2015 생물 다양성의 날 및 습지의 날' 기념행사가 열렸다. 이날 행사에서 숨은 물뱅뒤는 람사르습지 인증서를 전달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