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되살아난 전시행정 폐습

지난달 21일 우리 해군은 '아덴만의 여명' 작전으로 소말리아 해적에게 끌려가던 삼호주얼리호 선원들을 극적으로 구출했다. 국민은 정부와 군의 결단력과 뛰어난 실전 능력을 극찬했다. 북한의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으로 국가 자존심과 수십여명의 목숨을 잃은 터라 아덴만 작전은 그야말로 국민을 후련하게 했다. 야당마저 칭찬 대열에 합류했고 이명박 대통령은 "내가 지시했다"며 우쭐해 했다. 흥분이 가라앉자 국민의 시선은 중상을 입은 석해균 선장에게 쏠렸다. 작전 직후 정부와 군은 석 선장이 배에 총상을 입었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고 나머지는 모두 무사한 완벽한 작전이었다고 발표했다. 진실은 달랐다. 구출작전 당시 석 선장은 6발 이상의 근접사격을 당해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석 선장이 의식을 잃은 채 사투를 벌이고 있는 그 순간 정부는 그저 업적 홍보에만 급급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힘들다. 과유불급이라고 하지 않던가. 국민은 부정적 사실을 축소한 채 과잉 홍보를 한 정부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고 있다. 석 선장의 상태를 가감 없이 알려줬다 해도 불가피한 희생을 이해할 만큼 국민의식은 높아졌다. 왜곡 또는 과장 대신 진솔한 태도로 당당히 일을 처리해 나가는 성숙한 정부를 갖고 싶은 건 국민의 한결같은 바람이다. 이런 점에서 오는 10일 또다시 기업인들을 부르는 공정거래위원회의 행태는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공정위는 이 대통령의 "기름값이 묘하다"는 발언 이후 물가잡기의 선봉장이 된 듯하다. 정유사들의 원가자료를 싹쓸이하는 등 직권조사를 남발하는 것도 모자라 기업인들을 불러 '기합주기'를 할 태세다. 공정위뿐만 아니라 동반성장위원회 등 다른 정부기관들도 대통령 말 한마디에 요란을 떤다. 정부가 전시행정을 한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상식과 시장원리를 무시하고 보여주기식 이벤트에 치중해서 좋은 결과를 낳았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국가 현안을 푸는 좋은 방법 중에 포퓰리즘이라는 단어가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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