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변에 유력한 수가 있다고 굳게 믿은 왕레이는 확신이 담긴 손길로 69에 젖혔다. 대개의 경우 이런 형태에서는 백이 무조건 참고도1의 백1로 끊게 마련이다. 왕레이는 그렇게 진행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때 흑2로 뻗으면 어차피 백이 곤란하게 된다는 것이 그의 수읽기였다. 그러나 상대는 이세돌이었다. 흑의 주문을 즉시 간파한 이세돌은 상대방이 두려는 그 자리, 바로 70의 자리를 쓰윽 점령해 버렸다. 이렇게 되자 운신이 거북하게 된 쪽은 흑이었다. 당장 참고도2의 흑1로 잇고 싸우자니 돌이 무거워 내키지 않는다. “왕레이가 의표를 정통으로 찔리고 말았어요.”(김승준9단) 앞보에서 말한 바 있지만 흑69로는 70의 왼쪽에 뛰는 수가 최선이었고 그것이 아니라면 70의 자리에라도 두는 것이 좋았다. 왕레이는 고심하다가 손길을 우변으로 돌렸다. 흑71. 진작부터 벼르던 강력한 젖힘이었다. 부분적으로는 강력하지만 전체적인 배석으로 보아서는 다소 문제가 있었다. “우상귀의 흑대마가 아직 미생이잖아요. 원래 미생마 근처에서는 싸움을 벌이지 말라는 것이 불문율이거든요.”(김성룡8단) 노승일ㆍ바둑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