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비가 더 내려 코스가 흠뻑 젖었으면 좋겠다.” 볼에 진흙이 묻어 제대로 샷을 컨트롤할 수 없다며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미국)가 어려움을 토로했다.
비 때문에 차질을 빚고 있는 제109회 US오픈골프대회에서 진짜로 선수들을 괴롭히는 것은 폭우가 아니라 그 때문에 생기는 진흙과 물먹은 벙커다.
구르지 않는 페어웨이·물먹은 벙커 '산넘어 산'
우즈, 3오버로 반스에 11타차… 최경주는 4오버
미국프로골프(PGA)투어도 일반 대회에서는 볼에 진흙이 묻을 경우 ‘들어올려 닦은 뒤 놓고’ 치는 프리퍼드 라이(preferred lies) 규칙을 적용한다. 하지만 메이저대회는 ‘볼이 있는 그대로 플레이한다’는 원칙을 고수해 이를 허용하지 않는다.
우즈는 2라운드를 마친 뒤 “페어웨이에서 볼에 진흙이 묻은 경우가 4번이나 있었다”면서 아쉬움을 나타냈다. ‘8자 스윙’ 짐 퓨릭(미국)은 “미국골프협회(USGA)가 받아들일 리가 없기 때문에 이야기할 필요도 없는 일”이라며 체념한 모습이었다. 볼에 걸리는 백스핀 양까지 조절하는 정상급 골퍼들에게 진흙은 커다란 변수다.
페어웨이와 벙커가 물러지면서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도 많다. 이안 폴터(잉글랜드)는 “공이 떨어진 뒤 거의 구르지 않으면서 원래 긴 파4홀이 더 길어졌다. 벙커에 떨어진 볼은 모래에 파묻혀버려 탈출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마이크 위어(캐나다)는 숫제 연습장에서 볼에 진흙을 묻히고 볼을 때리는 연습을 해 효과를 봤다고 밝히기도 했다.
21일(한국시간) 미국 뉴욕주 파밍데일의 베스페이지골프장 블랙코스(파70ㆍ7,445야드)에서 열린 대회 2라운드와 3라운드 일부 경기 결과도 날씨와 진흙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컷을 통과한 60명 가운데 절반 정도가 3라운드를 시작도 하지 못한 가운데, 선두 리키 반스(미국) 등 상위권 선수들은 비가 잦아든 오전 시간대에 경기하며 타수를 줄였다. 반스는 2라운드 합계 8언더파 132타로 대회 36홀 최소타를 1타 줄였다. 루카스 글로버(미국)가 7언더파로 1타 차 2위, 위어가 6언더파 3위를 달렸다. 이어 전 세계랭킹 1위 데이비드 듀발(미국)과 야노 아즈마(일본)가 3언더파 공동 4위에 올라 눈길을 끌었다.
우즈는 주로 빗속에서 플레이한 탓에 2라운드에서 1타를 줄인데 그쳤다. 3라운드 1번홀만 치른 그는 합계 3오버파로 선두에 11타나 뒤져 대회 2연패에 비상이 걸렸다. US오픈에서 2라운드까지 11타 차이의 열세를 뒤집고 우승한 예는 1975년 루 그레이엄이 유일하다.
최경주(39ㆍ나이키골프)는 3라운드 첫홀까지 4오버파로 공동 42위에 처졌다. 앤서니 김(24)은 3라운드 5개 홀까지 우즈와 같은 공동 34위. 배상문(23ㆍ키움증권)과 위창수(37)는 각각 6오버파와 7오버파에 그쳐 컷 기준(4오버파)에 못 미쳤다. 폴 케이시ㆍ파드리그 해링턴ㆍ어니 엘스 등도 컷오프됐다.
'프리퍼드 라이(preferred lies)'란
'프리퍼드 라이(preferred lies)'는 비정상적인 코스 상태에 대비해 제정해 놓은 일종의 구제 방법이다. 골프룰 부속규칙에 규정된 프리퍼드 라이에 의해 벌타 없이 구제 받을 수 있다. 평소 '볼은 놓여 있는 그대로 친다'는 골프의 기본원칙이 적용되지만 폭설과 폭우, 해빙기 등 코스 상태가 좋지 않을 때 임시로 적용된다.
이 규칙을 적용할 때는 티펙 등으로 볼의 위치를 표시하고 집어올려 진흙을 닦아낸 뒤 원래 지점에서 홀에 가깝지 않게 규정된 구역(예를 들어 6인치, 1클럽 길이) 내에 놓으면 된다. 볼은 떨어뜨리는 '드롭'이 아니라 내려놓는 '플레이스' 처리를 한 뒤 친다.
한편 프리퍼드 라이는 '그 홀' '페어웨이'의 볼만으로 제한된다. 마루야마 시게키(일본)는 2004년 NEC인비테이셔널 3라운드에서 이 규정에 따라 3번홀 페어웨이에서 볼을 닦아 플레이 했으나 벌타를 받았다. 그는 2번홀 플레이 도중 티샷을 옆에 있는 3번홀로 보냈던 것. 박세리(32)도 2007년 10월 제주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하나은행코오롱챔피언십 2라운드 17번홀에서 러프에 있던 볼을 무심코 집었다가 1벌타를 받은 일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