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장윤현 감독 "가비, 관객과 만나게 된 자체가 기적"

여배우 바뀌고… 제작비 깎이고… 시나리오 수정만 3년…<br>조선 최초 바리스타 이색 소재로<br>고종 독살 음모 얽힌 비화 그려<br>"커피 처럼 영화도 삶에 휴식 줘"



'접속'(1997)으로 멜로 영화의 새로운 감수성 제시했고'텔미썸딩'(1999)으로 현대인의 고독을 치밀하게 그렸다가 이번엔 커피·사랑·역사를 들고 찾아왔다. 영화'가비'(제작 오션필름)다. 커피와 고종 독살 음모에 얽힌 비화를 담아냈다. 대한제국을 선포하기까지의 역사적인 사실에 따냐(김소연)와 일리치(주진모)라는 허구적 인물의 사랑을 버무린 '팩션'(Fact+Fiction) 사극이다.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가비'의 장윤현(44ㆍ사진) 감독을 만났다. 깊고 진한 에스프레소 두 잔을 놓고 대화는 무르익어 갔다.

◇차가운 시절, 마지막 왕의 슬픈 이야기


"가비는 누군가의 사랑이다. 가비는 제국의 꿈이다." (영화 속 대사)

영화 '가비'는 고종의 곁에서 커피를 내린 조선 최초의 바리스타 따냐(김소연)와 그녀를 지키기 위해 스파이가 된 일리치(주진모)의 사랑 이야기로만 점철되지 않는다. 영화는 조선의 마지막 왕, 고종(박희순)에 대한 '다시 보기'를 시도한다. 우리의 커피 문화가 시작된 곳이자 근대화를 알리는 출발점이 된 커피하우스 정관헌은 함녕전 등의 고 건축물을 조용하게(靜) 바라보는(觀) 곳이라는 뜻을 품고 있다. 장 감독은 이를 두고 근대화라는 과제를 품고 있는 조선의 운명을 치우침 없이 바라보려는 고종의 의지가 담겨 있는 대목이라 해석한다.

"고종은 나약한 군주가 아니었어요. 나약하게 비춰지길 원했던 사람에 의해 그렇게 비춰진 것뿐이죠. 고종은 일본 사학계에서 뽑은 아시아를 움직인 정치적 인물 50인에 들기도 했어요. 조선의 새로운 비전을 만들고자 누구보다 몸부림쳤던 인물이죠."

◇ 강렬한 쓴맛 끝엔 달콤함이…

'뭔가를 잃어 크게 흔들리고 상심한 그 지점이 때론 기회나 행운의 시작점이 되고는 했다'(장윤현 산문집 '외로워서 완벽한'中)


'가비'는 당초 CJ엔터테인먼트가 투자 배급하기로 했던 100억원짜리 영화였다. 그러나 러시아 로케이션 등을 놓고 투자, 제작사가 이견을 보였고 급기야 CJ가 손을 떼는 일이 벌어졌다. 애초 출연하기로 했던 여배우는 촬영 지연으로 중도 하차했다. 시나리오 수정에만 꼬박 3년을 쏟았다. 100억원이 아닌 52억원으로 제작에 들어갔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가비'다.

관련기사



"스태프들과 배우들이 함께 우여곡절을 넘어줬다는 데 정말 감사하죠. 흥행도 중요하지만 '가비'가 관객을 만날 수 있게 된 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생각해요."

◇ '더치커피'를 닮은 사람

더치커피는 꾸준히 오래 자신의 꿈을 향해 걸어간 사람들, 포기하지 않고 노력을

모아낸 사람들을 닮은 커피다. (장윤현 산문집 '외로워서 완벽한'中)

장 감독은 하루도 빼 놓지 않고 영화만을 생각한다고 한다. 무엇이 그를 이끌리게 하는지 물었다.

"무엇보다 우리 삶에서 잠시 쉬어가는 게 중요하잖아요. 커피처럼 영화라는 것도 우리 삶에 휴식이 되어 주는 것 같아요."

그 역시 오랜 시간 한 방울 한 방울 떨어뜨려 만들어지는 '더치커피'를 닮아 있었다. 그렇게 묵묵히 뭇 사람들을 위한 쉼표 같은 영화를 만들고 있었다.

김민정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