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청문회가 곧 열린다. 온 국민이 고통을 겪고 있는 경제 위기의 책임을 규명하기 위해서다. 이미 경제 실정에 책임이 있다고 거론된 사람들은 재판에 계류 중이다. 그러나 경제정책 실패에 대하여 사법적 차원의 책임을 묻는 것이 반드시 옳은 것인지, 더군다나 법원에 계류 중인 사건에 대해 국회에서 정치적 책임을 다시 따지는 것이 합당한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통념적으로는 정책타당성 여부에 대한 평가와 책임은 당해 정권의 신임을 묻는 국민의 선거로 족하다. 다만 우리 사회에 엄청난 고통과 불안을 초래한 경제 실책에 대하여 그 원인을 규명하고 책임을 밝히는 것은 재발방지와 정책결정 과정의 결함을 보완한다는 차원에서 청문회의 의의를 찾을 수는 있다. 이번 IMF 외환위기는 대내적으로는 기업의 과다한 차입에 의한 방만한 투자와 금융산업의 낙후성에서 기인하는 누적된 부실채권, 그리고 정부의 위기대처 능력이 취약한 데 따른 외환유동성 부족이요, 대외적으로는 타이에서 시작된 아시아 통화위기 전염효과의 결과라고 요약할 수 있다.
그러나 정작 많은 국민들이 궁금하게 생각하는 사실은 우리에게 수많은 경제 전문가와 우수한 경제관료가 있는데도 어째서 외환위기가 발생할 것을 미리 예측하지 못하였는가 하는 의문이다. 돌이켜보면 외국언론은 일찍부터 아시아 통화위기와 연계해서 한국의 외환위기 가능성을 경고하였다. 그러나 정부는 우리 경제의 기초여건(ECONOMIC FUNDAMENTALS)이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는 달리 구조적으로 탄탄하기 때문에 외환위기의 가능성이 없다고 안이하게 대처하였다. 생각하건대 정부가 외환위기가 발생할 것을 예측하지 못한 것은 다음과 같은 요인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첫째는, 국제 금융시장 및 세계경제 상황에 관한 정보수집과 분석에 대한 정부의 능력 부족이다. 게다가 정부 내에서의 의사소통과 의사결정 채널의 경직성으로 인해 정부부처간의 정확한 상황판단과 효율적인 정책조정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둘째, 김영삼 정부 때 미국 및 일본과의 외교적 협력관계가 역대 정권 중에서 가장 소원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때문에 위급상황에 정확한 정보나 자금지원을 받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셋째, 정부는 금융규제를 풀면서도 금융자유화에 필수적으로 따라야 할 금융감독을 방기하다시피 했다. 우리 종금사들이 단기 금융차입으로 장기대출을 하고 위험성이 높은 정크 본드에 투자하였어도 이에 대한 점검이나 견제가 없었다. 넷째, 우리 정부는 총외채가 1,500억달러를 초과하고 단기자금이 총외채의 60%에 달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연히 상환기간이 연기(ROLL OVER)될 수 있다고 안이하게 생각하였다. 다섯째, 국제 금융시장의 자금조달에 있어서 국제 신용평가기관의 신인도 평가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간과하여 우리나라 및 기업의 국제신인도 평가가 지나치게 하락하는 것을 방지하지 못한 점이다.
지난 1년간 우리 국민은 뼈를 깎는 구조개혁과 미증유(未曾有)의 대량실업이라는 고통을 감수하면서 위기극복에 심혈을 기울여왔다. 그 결과 외환 보유액은 500억달러를 넘었고 올해 국제수지 흑자도 4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위험과 불안 요인이 도사리고 있다. 이왕에 하기로 한 청문회이니 차제에 철저한 원인규명 과정을 통하여 효과적인 외환위기 관리 시스템을 공고히 하여야 한다.
우선 보다 충분한 외환 보유액을 확충하고 환율정책을 보수적으로 운용할 필요가 있다. 국제적인 투기자금의 규제방법이 아직 강구되지 못하였고 국제 금융시장의 불안도 당분간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국제 금융자금의 흐름, 국제 투기자금의 동향, 각국의 경제상황에 대한 정보를 신속히 수집하여 분석하고 그 정보를 정부·기업 등 경제 주체 모두가 공유하는 조기 경보 시스템을 구축하는 한편 정부 부처간의 효율적인 정책 조정기능을 높여야 한다.
또한 국제간의 공조체제를 긴밀히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한·일 중앙은행간에 긴급 통화 스와프 계약을 체결하거나 아시아통화기금 창설과 같은 지역적 국제금융 협력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끝으로 금융정보를 신속히 교환하고 자금조달을 용이하게 하는 한편 첨단 금융기법을 통한 우리 금융산업의 고부가가치화를 위해서 우리나라에 국제 금융센터 설립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