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개월간 군장만 꾸려왔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동의안이 마침내 국회의 문턱에 들어섰다. 우여곡절 끝에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 상정된 비준 동의안은 오는 15일 공청회를 시작으로 본회의 처리를 위한 세부 절차에 들어간다. 최선의 시나리오는 이달 내 본회의 처리지만 이를 위한 물리적인 시간은 결코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다.
당장 통합민주당(가칭)의 반대파와 민주노동당 등이 잇따른 공청회와 청문회를 통해 지연작전을 펼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여기에 13일 동시 상정된 남북총리회담 합의서의 비준 동의안을 처리하기 위한 막후카드로 FTA 비준안을 활용할 가능성까지 고려한다면 2월 통과 가능성은 더욱 불투명한 상황이다.
◇청문회 등 심의 절차 길어질 가능성 농후=통외통위는 이날 회의장까지 바꿔가며 찬반토론 없이 비준 동의안을 곧바로 상정했다. 실력저지를 취할 것으로 예상됐던 민노당은 회의장 밖에서 항의하는 데 그쳤다. 통외통위는 상정 뒤 곧바로 비준 동의안 공청회 날짜를 15일로 잡았다. 상정 이틀 후 공청회를 개최하는 것은 한시가 급한 임시국회 일정상 다소 고무적이다. 그러나 여전히 2월 처리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4월 총선을 앞두고 유권자 표심을 감안해 총선 이후 처리를 원하는 정치권의 복잡한 셈법이 얽혀 있기 때문이다.
통합민주당이 공청회와 청문회 등 정해진 심사 절차를 모두 거친 뒤 법안소위에 넘기자고 주장하고 있는 점도 부담이다. 최성 통합민주당 의원은 이날 상정 관련 의사진행 발언에서 “비준시기는 미국 의회의 비준시기를 봐가면서 조절하는 게 타당하다”며 “(비준)반대는 하지 않겠지만 표결 참여는 거부한다”고 소극적인 입장을 견지했다. 최 의원은 또 공청회와 관련, “타이틀을 ‘경제효과에 대한 공청회’로 국한하지 말고 ‘전반적 효과에 대한 공청회’로 하자”고 주장했다. 논의의 폭을 넓일 경우 자연스럽게 추가 공청회나 청문회를 열 가능성이 커지고 결국 2월 내 처리는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작아질 수밖에 없다. 청문회를 개최하려면 1주일 전 증인소환을 신청해야 하는 등 시간이 촉박한 탓이다.
민노당의 반발도 공청회가 결코 순탄하지 않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민노당은 동의안 상정이 이뤄지자 이를 날치기로 규정하면서 “2월 국회에서 동의안 졸속처리를 반드시 저지할 것임을 천명한다”고 반발했다.
◇여야 간사 간 합의 있으면 2월 극적 처리될 수도=가능성은 높지 않지만2월 국회에서 동의안이 처리될 가능성도 남아 있기는 하다. 통외통외 여야 간사 간에 조속한 처리를 약속하는 ‘’ 합의를 이뤄내면 된다는 것. 통외 한나라당 간사인 진영 의원 측은 물리적으로 2월 내 처리가 어렵다는 입장을 밝히면서도 간사 간 합의만 있다면 불필요한 청문회 절차 없이 공청회를 끝으로 동의안을 법안심사소위로 올려보낼 수 있을 것으로 관측했다. 이후 18일 상임위를 열고 동의안을 의결하면 다음날인 19일 본회의 상정도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15일 단 한 번의 공청회만으로 심의에 필요한 ‘형식적’ 절차가 마무리된다면 공청회가 사실상 ‘8부 능선’을 넘는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한나라당 일각에서는 특히 손학규 통합민주당 대표가 이날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비준 동의안의 적극 처리를 시사한 발언을 한 데 대해 일부 고무된 반응도 보였다. 손 대표는 “한미 FTA의 여러 문제점과 농민들의 어려움, 미국 의회 처리 과정에 대한 우려 등이 많이 있는 것을 안다”면서도 “국제화ㆍ개방화 시대에 맞춰 정상적 처리가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통합민주당이 2월 국회 내에 처리하겠다는 시그널을 보낸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