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장 기대 높지만 난관 산적
번영 기틀 마련한 엘 여왕 본받아야
과욕은 금물…기반 닦는데 주력 필요
갈등 치유, 적재적소 인사 급선무
겨울을 달궜던 대선 레이스가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승리로 끝났다. 대단하다. 선거참관인인 대학생이 악수를 거부할 정도로 인기 없는 현직 대통령과 같은 당적의 후보가 당선됐다는 사실은 박 당선자 개인의 득표경쟁력을 말해준다. 당선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풀이된다. 원칙과 상식을 중시하는 지도자라는 인식과 ‘잘살아보자’라는 구호로 상징되는 개발연대의 추억 덕분이다.
박 당선자는 기대만큼 잘 해낼 수 있을까. 장담하기에는 상황이 너무도 불투명하다. 무엇보다 글로벌 경제위기가 쉽게 가실 징후가 없다. 얼어붙은 국내경기도 마찬가지다. 꽉 막힌 경기를 풀어나가는 처방인 재정 여건도 전임자에 비해 훨씬 열악한 가운데 지출요인은 늘어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경제민주화와 복지 확대는 투입 비용도 비용이지만 파급효과를 가늠하기도 어렵다. 선거를 통해 확인된 보수 진보 진영간 간극을 어떻게 메울까도 난제다.
대외 여건 역시 안개 속이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와 일본 등 한반도를 둘러싼 4대 강국 모두 올해 정권이 바뀌거나 집권 2기를 맞아 국제협력과 조율보다는 자국 이익 챙기기를 우선하는 경향이 짙어졌다. 경제적으로는 환율과 무역전쟁, 지역적으로는 영토분쟁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올해 3대 세습을 맞은 북한 정권의 호전성도 여전하다.
당선은 축하할 일이지만 숱한 장애물과 봉착할 박 당선자와 새로운 정권에게 권고하고 싶은 게 있다. 박 당선인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은 엘리자베스 1세 영국 여왕을 본보기로 삼으라는 것이다. ‘위대한 CEO 엘리자베스 1세’의 저자 앨런 액슬로드에 따르면 ‘즉위 직전 잉글랜드는 부도 직전’이었다. 프랑스에 있던 마지막 대륙 영토 킬레를 상실하고 국민들은 영국국교회와 가톨릭간 종교갈등으로 내전 분위기였으며 재정은 파탄 상태였다.
엘 여왕의 통치가 끝난 뒤에는 모든 게 바뀌었다. 스페인의 아르마다(무적함대)를 물리쳐 해상패권에 다가섰고 영국의 주화는 유럽에서 가장 신용 높은 화폐라는 지위에 올랐다. 북미 식민지 개척이 시작되고 문호 세익스피어가 등장하는 등 문화도 꽃피었다. 런던 증권거래소와 동인도회사 설립도 이 시기다. 영국은 유럽 변방의 2류 국가에서 중심국가로 발돋움했다. 영국인들의 심성에 ‘여왕이 즉위하면 국운이 핀다’는 믿음이 자리잡은 것도 빅토리아 여왕과 함께 엘 여왕 덕분이다.
박 당선자와 엘 여왕은 공통점도 적지 않다. 불행하게 어머니를 잃었고 알게 모르게 정치적 유배기간을 강요받았다. 처녀라는 점도 같다. ‘명예와 정직을 중시하고 진실을 말하는 것을 최고로 삼는다’엘 여왕의 가치관은 ‘원칙과 상식을 중시한다’는 박 당선자의 ‘원칙과 중시한다’는 모토와 맥락이 닿는다.
엘 여왕이 즉위 직후 가장 심혈을 기울인 것은 두 가지. 첫째는 예배절차 통일과 제 2차 수장령을 통한 종교적 갈등 해소와 화합이었다. 영국 국교회로 종교적 통일성을 기하면서도 이전의 국왕들과 달리 단일한 신앙을 강요하거나 국민들의 양심과 상상력을 손상시키지 않도록 노력을 기울였다. 가톨릭이면서도 겉으로는 국교도처럼 행세하는 사람들도 능력에 따라 중용했을 정도다. 적재적소 인재등용은 최대의 성공 요인으로 꼽힌다. 두번째는 화폐개혁을 통한 경제 건실화. 금화와 은화에 각종 금속을 더해 순도가 떨어진 주화를 거둬들여 재평가하고 순도 높은 정화로 다시 주조한 화폐개혁 조치를 내렸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그레셤의 법칙으로 유명한 재정고문 토마스 그레셤의 건의를 받아들였다고 전해지는 화폐개혁은 만성적인 인플레이션을 해소하고 성장을 기반을 다졌다.
박 당선자의 갈 길이 바로 여기에 있다. 갈등을 봉합하고 안정적 성장의 기틀 마련. 경계해야 할 것은 과욕은 금물이라는 점이다. 5년 단임 대통령이란 시간적 제약으로는 45년간 절대왕권을 행사한 엘 여왕의 치적에 도달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국민들도 새로운 정권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이라는 과도한 기대보다는 전체적인 눈높이를 낮출 필요가 있다. 재도약의 기반을 닦는다면 박 당선자는 누구보다 사랑과 존경을 받는 대통령으로 기억될 수 있으리라. 부디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hongw@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