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5월 14일] 119는 청구서가 없다

소아과 전공의가 근심스러운 얼굴로 교수실을 찾아온 적이 있다. 아버지께 몇 년째 위장병이 있는데 최근에 그 증상이 더 심해져 걱정이라는 것이다. 얼마 전에는 담석증이 있어 내시경으로 담석을 제거했는데도 증상이 계속되고 때로는 식은땀을 흘릴 정도로 복통이 심하다고 했다. 곧바로 협심증에 대한 정밀검사에 들어갔고 심장혈관 세 개 중 두 개가 거의 95% 이상 막혀 있어 협착 부위를 넓혀주는 스텐트 시술을 했다. 그 전공의의 아버님은 그 이후로 단 한 번 통증도 없이 편안한 삶을 보내고 계신다고 한다. 심장혈관이 좁아져 혈류 소통이 원활치 않아 통증이 오는 것이 협심증이고 완전히 막혀버린 것이 심근경색증이다. 이 두 가지 모두 신속한 조치로 생명을 구할 수 있다. 문제는 심장병이라고 하면 가슴이 아파야 하는데 전공의의 부친처럼 다른 부위의 불편함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이다. 혈관이 좁아지는 위치에 따라 배가 아플 수도 있고 턱이나 목이 죄는 느낌이 들 수도 있으며 특히 여성에게는 쉬 피로하거나 식은땀ㆍ메스꺼움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협심증은 시간적 여유가 있으나 심근경색증은 그렇지가 않다. 심장 근육의 일부가 썩기 시작하기 때문에 혈압이 떨어져 위험한 경우도 있지만 심장을 뛰게 하는 전기장치가 순식간에 마비돼 멀쩡한 의식에서 한두번 전신 경련을 일으킨 후 바로 사망하는 돌연사의 주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이때 4분, 늦어도 10분 이내에 심장을 다시 뛰게 해야 회복되더라도 식물인간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중년 이후에 아래턱부터 배꼽 사이에서 ‘이제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기분 나쁜 증상’이 있다면 지체하지 말고 병원을 찾아야 한다. 특히 식은땀이 동반되면서 본인이 고혈압ㆍ당뇨ㆍ고지혈증ㆍ흡연자, 특히 심장병의 가족력이 있으면 더욱 지체하지 말아야 한다. 심장질환은 치료 시기를 놓칠 경우 손을 쓸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종합병원에서는 이런 환자에게 막힌 혈관을 개통시키는 시술을 바로 한다. 일단 병원에 도착하면 90% 이상의 소생률을 기대할 수 있다. 119 앰뷸런스는 청구서를 내밀지 않는다. 우리나라 119 구조대는 좋은 시스템과 신속성을 갖고 있는 훌륭한 팀이다. 심장병이 아니면 다행이지만 ‘이상한 증상’이 있을 때 119를 찾는 지혜는 온 가족이 후회하지 않는 명철한 판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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