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7월 23일] 슈퍼컴퓨터도 못 맞추는 날씨

최근 기상청이 태풍 ‘갈매기’의 폭우시점을 예측하지 못해 국민의 원성을 샀다. 일부에서는 ‘차라리 할머니 신경통이 더 정확하겠다’는 비아냥까지 나왔다. 수백억원을 들여 슈퍼컴퓨터를 도입하면서 정확한 예보를 자신하던 기상청이었기에 실망은 더욱 컸다. 왜 그럴까. ‘하드웨어’인 슈퍼컴퓨터의 성능은 분명 훌륭했지만 ‘소프트웨어’에 해당하는 수치예보 모델이 문제였다. 수치예보 모델은 관측소에서 보낸 기온ㆍ습도ㆍ풍향ㆍ풍속 등의 데이터를 분석하는 프로그램인데 기상청은 지난 1991년 일본에서 들여온 수치예보 모델로 지금껏 날씨를 예측하고 있다. 기상청 예보능력을 진단하는 한 컨설팅 업체 관계자는 “기상청 수치예보 모델의 성능은 세계 최하위권”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세계기상기구(WMO) 평가에 따르면 기상청이 사용하는 수치예보 모델의 정확도는 2000년 세계 8개국 중 꼴찌, 2001년부터 10개국 중 9위를 기록하다가 2005년에는 11개국 중 10위였다. 분명히 낙제 수준이다. 그런데도 기상청 측은 “새로운 모델을 수입하기보다는 미흡하더라도 기존 모델을 개량해 쓰는 것이 더 낫다는 판단이 있었다”고 밝혔다. 17년 동안 조금씩 프로그램을 개량해 적용하는 정도로 만족했다는 이야기다. 다행히 내년에는 500억원짜리 슈퍼컴퓨터 3호기와 함께 영국 기상청에서 새로운 수치예보 모델을 들여오기로 했다고 한다. ‘건전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1세기 고대 로마의 시인이었던 유베날리스의 ‘풍자시집’에 있는 유명한 구절이다. 그런데 사실 이 구절이 들어간 문장은 ‘건전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까지 깃들면 바람직할 것이다’였다. ‘몸짱 열풍’에 휩쓸렸던 로마 젊은이들이 생각은 비루했다는 점을 비꼰 시구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기계 역시 하드웨어라는 ‘몸’ 못지않게 소프트웨어라는 ‘정신’도 중요하다. 기량이 뛰어난 선수가 많아도 지략이 뛰어난 감독이 없으면 운동경기에서 이길 수 없듯이 하드웨어가 아무리 훌륭해도 이를 십분 활용할 소프트웨어가 없다면 ‘슈퍼’가 아니라 ‘하이퍼’ 컴퓨터를 도입해도 국민 혈세만 낭비할 뿐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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