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8월10일] 허버트 후버


‘번영이 저 모퉁이에서 오고 있다.’ 허버트 후버(Herbert C. Hoover) 대통령의 말에 미국인들은 냉소를 보냈다. ‘도대체 어느 모퉁이란 말인가.’ 후버는 대공황에 모든 것을 잃은 인물. 국제적 사업가, 전쟁의 참상과 기아에 허덕이는 사람들을 구한 인도주의자, 유능한 행정관료라는 명성이 경기침체에 파묻혔다. 1874년 8월10일 아이오와주에서 태어난 후버는 전형적인 자수성가형. 여섯살에 아버지를, 열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주경야독하며 스탠퍼드대학 지질학과를 나온 뒤 가는 곳마다 금맥을 캐내는 광산기술자로 이름을 날렸다. 탄광 개발차 방문한 중국에서 의화단의 공격을 당하자 외국인 체류민을 모아 민병대를 조직하는 지도력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광산학과의 교과서로 쓰인 ‘광업의 원리’도 펴냈다. 세계 광산업계의 거물로 성장한 그가 사업을 떠난 계기는 전쟁. 1914년 벨기에가 식량위기를 맞자 독일을 설득하고 미국인들의 자금을 모아 식량을 전달, 국제적 명사로 떠올랐다. 1921년 소련 기근 때는 ‘정치체제가 무엇이든 굶는 사람은 도와야 한다’며 구호사업을 벌였다. 인도주의자라는 명망도 높아졌다. 캘빈 쿨리지 행정부의 상무장관으로 재직하며 농업구제와 보호관세를 추진, 인기가 높아진 후버는 1928년 대통령 선거에 공화당 후보로 나서 승리를 따냈다. 여기까지가 인생의 상승기. 취임 7개월 만에 터진 주가폭락으로 시작된 대공황에는 어떤 정책도 먹히지 않았다. 1932년 재선에 실패한 뒤 58세에 은퇴해 사망(90세)할 때까지 ‘자질은 뛰어났지만 실패한 대통령’이라는 평가 속에 살았다. 후버를 괴롭혔던 경제는 요즘 미국의 골치거리다. 조지 부시 행정부의 고용 창출은 후버 이후 최악이라는 평가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