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강의노트] 전자 증권화

실물증권 발행 폐지 '효율성 강화'2006년10월24일 경기도 일산에 있는 증권예탁원 예탁증권보관창고. 20세기 '최대의 도둑'으로 불렸던 A씨가 필생의 사업(?)으로 이 예탁원 창고를 털기 위해 전자감시망을 뚫고 침입한다. 그러나 창고 안을 샅샅이 뒤진 A씨 일당은 허탈한 표정을 짓는다. 이들은 경찰에 조사에서 "레이저 등 최첨단 장비를 이용해 침입했지만 훔칠게 하나도 없었다"고 실토했다. 이들은 경찰 조사 결과 예탁원 보관창고에 수백조원의 증권이 보관돼 있다는 옛 뉴스만을 보고 침입했다 허탕을 친 것이다. 침입을 당한 증권예탁원측은 "시설에 약간의 피해가 있었을 뿐이며 피해규모는 구멍뚫린 담장 등에 대한 수리비용으로 1,000만원 정도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이는 전자증권화가 시행되는 오는 2006년의 일을 가상한 것이다. 현재 일산에 있는 증권예탁원에는 상장회사 주권을 비롯해 국ㆍ공채, 등록기업 주권, 등록 또는 상장되지 않는 벤처기업 등의 주권이 보관돼 있다. 액면금액으로만 환산해 도 수천조원에 이른다. 그러나 5년 정도가 지나면 일산 창고는 기념관 정도에 불과할 것이다. 인쇄용지에 찍혀 액면가와 권종별 금액이 나오던 증권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주가가 폭락할 때 투자자들 사이에 나오는 '예탁원에서 주식을 찾아 도배를 해야겠다"란 말도 옛 이야기가 된다. 정부는 지금 이 같은 전자증권제도(e-securities)를 도입하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전자증권화가 시행되면 눈에 보이는 유가증권을 발행하지 않는다. 다만 전자장부에 기재된 내용만을 가지고 유가증권의 권리를 인정한다. 쉽게 말해 주식투자자들이 가지고 있는 인쇄용지에 기록된 증권을 없애고 보관기관인 증권예탁원에서 통합관리하는 장부에만 증권의 권리가 남아있는 것이다. e-money, e-billing에 이어 증권도 전자화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주식ㆍ채권 등 유가증권을 발행하는 비용과 관리비용 등이 대폭 줄어들 뿐만 아니라 사고ㆍ분실 등으로 인한 문제도 발생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유가증권관리의 효율성이 한층 강화되는 것이다. ◆ 전자증권화를 하는 이유 전자증권제도를 시행하는 가장 큰 목적은 유가증권 관리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2차 세계대전후 일본은 경제가 회복되며 증권투자도 활발하게 이뤄겼다. 거래량이 급증하고 발행물량도 크게 늘어 증권거래소와 증권사의 관리능력을 초과하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이 과정에서 증권결제가 지연되는 사태가 발생하는 등 혼란을 빚었다. 국내는 이미 '주권불소지제도' '채권등록제도' '일괄예탁제도' 등이 시행되고 있어 이런 혼란이 직접적으로 발생하진 않았지만 제도관리를 위한 비용을 엄청나게 치르고 있다. 지난 99년 서울대학교 조사에 따르면 전자증권제도 시행으로 한해 1,300억원의 비용이 절감될 것으로 분석됐다. 전자증권화가 이뤄지면 눈에 보이는 관리비용 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비용감소 효과도 크다. 유상증자를 할 때 실물이 투자자의 손에 들어가기 까지 최대 40일이 걸리던 시간이 전자등권제도 시행으로 16일이 줄어들어 24일 정도면 유상증자에 따른 주주로서의 권리도 행사할 수 있다. ◆ 실물없어도 권리행사에 문제없나 '증권이 사라진다'라고 하지만 주식시장이나 채권시장이 사라진다는 말은 아니다. 권리의 증서인 증권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물론 투자자의 손에 권리가 기재된 실물증권이 쥐어지진 않는다. 중앙예탁기관인 증권예탁원의 장부에 주주의 권리가 모두 기재돼 있어 매매는 물론 양도ㆍ상속 등 권리행사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오히려 실물유가증권을 가지고 매매ㆍ양도 등을 할 때보다 거래의 안전성이 더 보장된다. 실제로 84년 전자증권제도를 도입한 프랑스를 비롯해 영국ㆍ덴마크ㆍ스웨덴 등은 증권거래의 안전성이 보장된 나라로 꼽히고 있다. 또 흩어져 있는 증권이 집중예탁기관인 증권예탁원으로 모아지면서 권리의 유통이 더욱 활발해진다. 이미 거래되고 있는 증권을 한 곳으로 모으기 위한 유인장치가 법적으로 마련돼 주식과 채권의 예탁비율이 각각 67.7%, 82&에 이르고 있지만 전자증권제도의 실행으로 증권예탁원으로 모아진 증권의 권리행사를 위한 원스톱서비스도 가능해진다. 금융기관의 업무가 대폭 줄어들어 투자자에 대한 서비스도 한층 강화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증권사에 주식을 입고할 때 기다리던 시간이 줄어들 뿐만 아니라 증권사의 주식관리업무가 없어지며 유휴인력을 이용한 다양한 서비스가 투자자에게 이뤄질 것이다. 집중예탁기관에 예탁된 증권 통계자료를 이용한 다양한 분석을 통한 상품개발도 가능하다. ◆ 투명한 증권시장의 첫 걸음 전자증권제도는 실질적인 '증권실명제'의 기반이 된다. 전자증권제도 아래서는 증권거래가 모두 공개된다. 기업집단간 유가증권을 통한 자금이동 및 출자관계 등을 비롯해 개인의 매매도 거래 즉시 집중예탁기관의 장부에 기재된다. 물론 실명제법에 의해 공개되진 않지만 투자자들의 부정행위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장치가 된다. 과거 구태의연하게 벌어지던 유가증권 이중매출, 허위매출 등 발행기관의 부정행위부터 투자자를 보호할 수 있는 근본적인 제도가 마련되는 것이다. 익명거래, 사설증권매매업자 등 음성적인 거래와 세금 회피와 부당한 상속 등을 위한 증권거래도 사전에 방지할 수 있다. 감독기관업무도 규제중심의 감독에서 벗어나 시장 중심의 감독으로 전환할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 증요한 것은 증권시장의 발전을 위한 효율성과 건전성의 두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계기가 된다. ◆ 문제점은 없나 현재 1,500개에 이르고 있는 상장ㆍ등록기업 모두의 실물유가증권을 당장 전자증권화시키는데는 무리가 있다. 국채ㆍ지방채ㆍ신주인수권 등 다양한 증권을 모두 단기간내에 전자증권으로 바꾸는 것도 한계가 있다. 전산인프라가 완벽하게 구축되지 않을 경우에는 매매에 의한 전산사고 뿐만 아니라 결제에 의한 전산사고도 우려된다. 법률적으로도 강제화적으로 전자증권제도를 시행할 것인가와 상법 등에 정의된 유가증권의 개념과 맞지 않을 수도 있다. 때문에 정부는 각종 제도보완과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임종룡 재정경제부 증권제도과장은 "특별법 제정 등 다양한 방안을 마련하고 과도기적인 시기를 둬 제도 시행으로 발생할 수 있는 투자자들의 혼란을 최소화할 방침"이라며 전자증권화를 차질없이 진행하겠다는 의지를 강조했다. 김현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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