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6월 4일] 경춘국도의 안개

지난주 말 춘천에 갈 일이 있었다. 어쩌다 춘천에 갈 때면 가슴부터 설렌다. 25년 전 군의관으로 근무하던 시절 석 달 동안 춘천으로 파견 근무하게 돼 서울에서 출퇴근을 했다. 안개가 산중턱에 걸려 있는 강변을 따라 춘천을 오가는 길은 정말 환상적이었고 몸에서는 엔도르핀(기분이 좋을 때 분비되는 호르몬)이 절로 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던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출퇴근길이었다. 울면서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다시 떠날 때까지 인간은 걱정과 연민ㆍ괴로움 등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 같다. 사춘기 때는 공연한 반발심이, 의사가 된 후로는 잠시도 떠나지 않는 환자와 병원 일에 대한 부담감이, 아이들이 장성하니 또 다른 염려가 항상 마음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나만의 문제는 아니겠지만 이제 50대 후반에 들어서는 이러한 걱정거리(?)를 해결하는 나만의 비결을 가져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특히 의료원장이 된 후 5,000여명의 의료원 직원을 책임지다 보니 두통이 없을 수가 없다. 하지만 춘천가도의 연두색 숲과 강물만 생각해도 어느덧 어깨가 나른해지며 머리가 맑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나만의 두통을 해결할 수 있는 비결인 것이다. 예전에는 주말이면 골프에 초대해주는 친구의 전화를 기다리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몇 시간만이라도 철저한 나의 시간을 가지려 노력한다. 토요일에는 서점에 들러 마음에 드는 책 몇 권을 사고, 좋아하는 메밀국수를 먹은 후 소파에서 독서 삼매경에 빠지기도 한다. 주말에 결혼식 등으로 나의 시간을 가지지 못할 때면 그 다음 한 주는 어딘지 모르게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혼자 있는 시간에는 지난 일주일을 정리해보고 꾸지람을 들은 직원에게 안부전화도 해본다. 항상 가지고 다니는 수첩을 옆에 놓고 그때그때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바로 기록해놓기도 한다. 또 일주일에 한번이라도 가족과 저녁을 함께하고자 하는 불문율도 세워놓았다. 보름달이 뜬 밤의 제주도 해변가, 가족과의 즐거웠던 남해의 다도해 여행, 유학 간 딸을 다시 공항에서 만날 때의 기쁨, 그리고 춘천가도의 안개 등등…. 마음과 몸이 힘들 때 자주 떠올리는 순간들이다. 삶이 고달프고 힘들 때 즐거웠던 순간과 사랑하는 가족을 떠올리며 인내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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