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에 접어든지 벌써 반년이 지났다. 연초부터 민생을 위한 부동산대책과 세제대책이 쏟아져 나왔지만, 이러한 서민을 위한 대책 이면에는 좀 산다 싶은 사람들을 옥죄는 강력한 세제규제가 도사리고 있었다. 바로 ‘차명계좌 증여추정’ 얘기다.
연초 세법개정 이후 6개월 동안 차명계좌에 대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문의가 있었다. 당장이라도 과세가 될 것 같이 느껴지는 불안감에 사람들은 과세를 회피할 수 있는 해법에 대해 알고 싶어했다. 문제는 세법 상 단순한 해법이 존재하지 않는 현실이라는 점이다.
차명계좌가 뜨거운 감자로 부각되면서 첫 번째로 물어보는 것 중의 하나는 차명계좌개설이 불법이냐는 것이다. 불법인 것을 알면서 금융기관이 금융계좌를 터줄리는 만무하다. 실명으로 개설된 차명계좌는 금융실명제법의 규제를 받지 않는다.
더불어 차명은 명의도용과는 다르다. 당사자간 합의된 차명거래는 불법적 원인을 내포하지 않은 이상 재산이 사실상 이전되지 않는다. 따라서 언제든 실명계좌로 이전이 가능하다. 물론 차명으로 문제가 발생하면 명의를 빌려준 것에 합의한 명의자도 그에 따른 책임을 지게 된다. 하지만 차명상태에서 별다른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면 불법적 요소가 발생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차명과는 다르게 명의도용은 합의 없이 타인의 명의를 사용한 것에 대하여 불법적인 책임이 즉각 발생한다.
이렇듯 차명계좌는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는 형태로 우리 생활 속에 이미 깊숙이 자리잡은 지 오래다. 사람들은 투자 다변화나 절세수단으로 각양각색의 차명계좌를 개설한다.
특히 부부끼리는 내 계좌, 네 계좌를 가리지 않는다. 공모주 청약이라도 하려면 가족구성원이 총동원된다. 아는 지인의 명의도 빌린다. 은행을 거래하면 예금자보호가 5,000만원뿐이다. 혹시 내 예금 보호 못 받으면 어쩌나 싶어 내 명의로 1억 투자할 것을 아이 이름으로 반 쪼개 적금을 들어가는 것도 다반사다.
물론 지금까지 정부차원의 규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대다수는 크게 문제시되지 않았다. 엄연히 모두 차명이었고, 엄격히 모두 문제가 되었어야 마땅했지만 우리나라는 그것도 하나의 성장통이었다. 그리고 여전히 과거 습관이 남아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묵인되었으나 지금은 허용될 수 없는 것들이 늘어나고 있다. 차명계좌도 그 대상이 되고 있다.
특히 새 정권은 슬로건처럼 ‘지하경제양성화’를 부르짖기 시작하면서 불법원인의 수단이 차명계좌인 현실을 반영해 크게 문제 삼기 시작했다.
과세 핵심 기관인 국세청에서는 이러한 정부 기조와 발맞추어 차명계좌 세무조사를 이미 시행하기 시작했다. 자력으로 금융계좌상 평가액을 가질 것 같지 않다고 생각되는 계좌를 선별해 자금출처 세무조사를 하는 것이다.
‘차명계좌포상금제도’ 등을 보자. 차명계좌를 신고하면 계좌 내 현금흐름을 분석해서 역으로 계좌에 쌓인 원인이 불법인지 아닌지 밝혀내겠다는 것이다. 불법자금인 경우 신고자에게 최대 10억원의 범위 내에서 포상금이 지급된다.
일반 예금이나 펀드 같은 투자상품을 차명운용 하는 것보다 더 심각한 것은 주식을 차명으로 거래하는 것이다.
주식처럼 명의개서로 인해 주주로서의 권리를 누릴 수 있는 등록재산의 경우 그 사실만으로 증여로 간주해 과세해버리는 규정이 1998년부터 존재해왔다. 이 조문의 적용은 대체로 비상장회사의 주주에 한정된 경우가 많았으나 최근 차명 상장주식도 관련 조문에 의거해 과세한 판례가 존재한다.
더 심각한 것은 상장주식의 경우 장내매매를 자유로이 할 수 있기에 명의신탁대상이 수시로 바뀔 수 있는데 명의개서 시점이 연속되는 경우 그 시점마다 각각의 다른 주식을 명의신탁했다면 전부 차명으로 보고 증여의제에 따른 과세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즉 원금 1억원을 가지고 5년간 5개종목을 매매해 매년 명의개서일마다 다른 종목으로 명의신탁된 경우 평가액의 증감이 없다는 전제하에 명의신탁대상가액은 5억원이 된다. 1억원을 투자했을 뿐인데 과세대상 증여세는 5억원에 대해 부과되는 것이다.
불과 몇 년 전에도 자녀명의 계좌를 통해 배제기준을 훌쩍 넘는 규모로 펀드나 주가연계증권(ELS)등 금융재산에 투자하는 사람이 무척 많았다. 하지만 그들 중 차명계좌로 세무조사 된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걸리지 않았다는 얘기다.
어찌 보면 차명주식인데도 과세하지 않고 사실상 눈감아 줬던 기간이 1998년 이후 15년 간이다. 현재 차명주식을 넘어 차명계좌 전체로 세법이라는 테두리를 매우 광범위하게 설정한 상태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과세당국은 차명을 봐주지 않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안 걸리면 그만’이라는 얘기가 계속 통할지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