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2년은 전 세계가 정치에 휩쓸린 한 해였다.
한국은 물론이고 미국ㆍ중국ㆍ일본ㆍ프랑스ㆍ그리스 등 세계 곳곳에서 선거나 정권 교체가 실시됐다. 민심을 잡기 위해 내셔널리즘이 판을 치면서 극우 정치인들의 도발적인 구호와 외부의 적을 겨냥한 공세도 난무했다.
재정 위기가 한창이던 그리스에서는 재정 긴축을 강요하는 독일에 반발하는 시위가 확산되고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을 탈퇴하자는 논의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중국과의 영유권 분쟁지역인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열도를 국유화한 일본에서는 정치인들의 망언이 속출하고 공공장소에 욱일승천기까지 등장했다. 중국에서는 반일 폭력시위가 들끓었다. 세상은 무척 시끄러웠다.
그래도 정치의 계절이 끝나고 새해가 오면 각국은 부득이 이해관계를 조율하면서 상호협력을 모색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선거가 끝나고 2013년도 두 달이 지난 지금 세상은 여전히 시끄럽다. 물론 전과 같은 정치적 내셔널리즘은 일단 수면 밑으로 들어갔다. 그리스의 반독 여론은 재정 위기가 진정되면서 잠잠해졌다. 센카쿠 열도를 둘러싼 중일 대립은 군사적 충돌 일보 직전 상황으로 치닫고 있지만 적어도 정치적인 물밑 대화에는 물꼬가 트였고 중국 내 반일 시위도 수그러든 지 오래다.
대신 내셔널리즘의 불길은 외환시장을 집어삼켰다. 일본 경제를 살리겠다며 무제한 돈 풀기를 선언한 아베 신조 총리는 가파른 엔저를 초래해 다른 국가들의 희생을 발판으로 증시 호황과 수출기업의 실적 개선 효과를 누리고 있다. 그 배경에는 오는 7월로 예정된 일본 참의원 선거가 있다.
일본이 촉발한 글로벌 환율전쟁에 대한 대응은 제각각이다.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3차 양적완화(QE3)에 나선 미국이 침묵을 지키는 가운데 정부 지지율이 추락하고 있는 프랑스에서는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유로화 절하를 위한 맞대응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나섰다. 반면 보수적인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정부가 9월 총선을 앞두고 자유시장주의 원칙을 버리고 외환시장 개입을 지지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 주요7개국(G7)은 이번주 말 환율전쟁 우려를 잠재우기 위해 공동성명을 내놓을 것으로 관측된다. 하지만 각국의 시장 논리가 아닌 정치 논리가 외환시장을 집어삼킨 지금 허울뿐인 공동성명에 기대하는 이는 없다.
정치의 계절은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