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물경기와 자산 시장, 경제 심리가 완벽한 디커플링(탈동조화)을 이루면서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이 딜레마에 빠져들고 있다. 최근 나온 3대 실물지표(수출·생산·소비)가 일제히 추락해 이것만 고려하면 추가 부양책이 어느 때보다 시급하다. 그러나 증시, 부동산 시장의 훈풍이 여전하고 경제 심리가 개선되고 있는데다 세월호 참사에 따른 기저효과도 기대할 수 있어 섣불리 나서기 애매한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전문가들은 수출 등 실물경기 둔화세가 예사롭지 않은 만큼 당국이 경기 호전을 기다리고만 있을 게 아니라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주문을 내놓고 있다.
◇수출, 금융위기 후 최장기간 마이너스=일단 실물경기 지표들은 줄줄이 경고음을 내고 있다. 성장 엔진인 수출은 4월 462억달러로 전년보다 8.1% 폭락했다. 4개월 연속 감소로 이는 금융위기 이후 근 6년 만에 가장 오랜 기간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이다. 정부는 그동안 "국제유가 급락으로 수출단가가 감소한 탓"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해왔지만 4월에는 물량마저 감소했다. 전년 대비 0.8% 줄어 3월의 6.2% 증가에서 급반전됐다.
생산도 마찬가지다. 2월 2.2% 급등(전월 대비)했던 전산업생산은 3월 0.6% 감소로 고꾸라졌다. 특히 제조업 평균 가동률은 73.6%로 2009년 5월(73.4%) 이후 가장 저조했다. 국내총생산(GDP)의 절반을 차지하는 민간소비의 척도, 소매판매도 2월 2.6% 증가에서 3월 -0.6%로 쪼그라들었다.
내·외수 동반 부진이 계속되며 일자리 증가폭도 6분의1 토막 났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분기 국내 사업체의 총 종사자 수는 1,508만명으로 1년 전보다 2만7,000명 증가하는 데 그쳤다. 지난해 1·4분기 16만7,000명이 늘어난 데서 급전직하했다. 4월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0.4%로 5개월째 0%대에 머물며 디플레이션 우려마저 커지고 있다.
◇자산 시장, 심리는 좋아지는데…깊어가는 당국 고민=반면 주식·주택 등 자산 시장과 경제주체의 심리는 호전되고 있어 정책 당국은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판단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 최근 조정을 받기는 했지만 코스피 지수는 여전히 2,100포인트를 훌쩍 넘어서 있다. 기대감으로 개미투자자를 증시 주변으로 몰리게 할 정도다. 주택 거래량도 매월 신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지난달 28일 현재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1만2,269건으로 4월 기준으로는 2006년 실거래가 조사가 시작된 후 가장 많았다.
움츠렸던 심리도 기지개를 펴고 있다. 4월 제조업 기업경기실사지수(BSI)는 80포인트로 전월보다 3포인트 상승, 1년래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소비자심리지수(CSI) 역시 104포인트로 3포인트 올랐다. 정책당국은 이런 긍정적인 면이 경제 전반에 확산할 것이라 낙관하고 있다. 여기에는 올 2·4분기에 세월호 참사 기저효과로 지표가 개선될 것이라는 전망도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소비심리가 나아지고 주택·주식 시장이 호조를 보이는 등 미약하지만 긍정적인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고 평가했다.
◇전문가 "낙관론 펼칠 때 아니다"…적극 대응 나서야=그러나 당국과 같이 좀 기다려보자던 전문가들의 기류는 행동에 착수해야 한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수출을 중심으로 실물경기 지표가 너무 안 좋기 때문이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동향분석실장은 "3월 산업생산 지표는 2월 수치가 좋게 나온 데 따른 기저효과를 감안해도 너무 많이 꺼졌다"며 "경기가 바닥을 다져야 반등하는데 바닥이 너무 약해 2·4분기에 반등의 힘이 나타나기 어렵다"고 전망했다.
우리 수출은 '사면초가'라 할 만큼 상황이 안 좋다. 최근 원·엔 환율은 100엔당 800원대(엔화 대비 원화 가치 상승)로 내려앉았으며 주요 수출 대상국인 미국도 1·4분기 경제성장률이 0.2%로 예상치(1%)를 크게 밑돌았다. 수출이 흔들리면 제조업도 동반 추락하고 이는 고용과 소비 감소로 직결된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디플레이션 우려가 지속되고 대외 환경이 악화되고 있어 더이상 낙관론을 펼치기 어렵다"면서 "금리 인하로 경기와 환율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