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냄비와 무쇠솥/유혁인 종합유선방송위원회 위원장(로터리)

우리 주변에서 무쇠솥이나 뚝배기가 귀해진지도 오래다. 아쉬운 것은 그 자리를 양은냄비가 대신하면서 우리의 성정마저 냄비체질로 바뀌는 것같다는 것이다.냄비는 쉬 끓고 쉬 식는다. 약간의 열만 가해도 쉽게 달아올랐다 쉽게 식는 것을 빗대어 양은냄비 같다고 한다. 이런 냄비체질이 일상생활에서는 「빨리빨리」로 표출된다. 그렇다고 나는 이 빨리빨리 그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하지만 빨리빨리 서두르다 보면 모든 일들이 대충대충 처리되기 쉽고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면 우리사회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인 각종 부실공사같은 것으로 이어지게 된다. 중요한 것은 신속하게 빨리빨리 처리해야 한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대충대충 처리해도 좋다는 면죄부를 주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신속과 정확중에 택일을 하라면 당연히 정확을 택해야 할 것이다. 신속한 부정확이란 얼마나 희극적인가. 이런 냄비체질은 여론이 만들어지고 사라져 버리는 것과도 무관치않다. 사건이 하나 생기면 너 나 할 것 없이 온갖 말들을 한마디씩 뱉어놓다가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잠잠해지고 만다. 만약 이러한 냄비의 형태가 합리성과 일관성을 요구하는 정책의 결정이나 집행에 반영되어 냄비행정이 된다면 그것은 심각한 문제다. 작은 일이지만 몇년전 까지만해도 간염이 국민병이라 하여 대중접객업소에서 일회용품 사용을 적극 권장한 적이 있었다. 그러다가 공해문제가 새로운 사회문제로 부각되면서 어느날부터인가 일회용품을 환경오염의 주범이라 하여 이를 금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국민의 위생건강이란 목표는 어디로 실종되었는가. 물론 환경오염 요인을 줄여 나가자는 데 반대가 있을 수 없다. 문제는 정책이나 행정이 이처럼 양은냄비식으로 이루어져서는 안되며 여러 문제점에 조화롭게 대처하고 일관성 있는 자세와 판단이 견지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극히 지엽적인 보기 중 하나지만 만에 하나 다른 국가의 큰 정책이 이런 식으로 결정되지는 않는지 곰곰이 생각해볼 일이다. 무쇠솥의 감정표출이 은근이라면 냄비의 감정표출은 성급함이다. 무쇠솥의 생활자세가 끈기라면 냄비의 생활 자세는 변덕스러움이다. 무쇠솥 문화에서는 은근과 끈기가 민족성의 대명사이기도 했다. 모든 사물에는 양면이 있게 마련이다. 무쇠솥이 필요한때 냄비를 쓰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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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혁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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