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의 봄'을 상징하는 리비아와 이집트에서 지난 11일 발생한 미 공관 습격사태로 미국의 중동정책이 중대한 고비를 맞게 됐다. 버락 오바마 정권은 지난 18개월 동안 중동 지역의 친서방 독재국가들에서 민주적 권력교체를 이뤄내기 위해 반정부시위대를 지원해왔다. 하지만 과거 어느 때보다 우호적인 태도를 견지해온 중동정책은 리비아 미국대사 피살과 공관습격 사태로 최악의 상처를 입게 됐다. 공화당을 중심으로 미국의 '유약한' 중동정책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선거를 한달여 남겨둔 미국의 대선정국에도 중동외교가 새로운 이슈로 급부상하고 있다.
◇오바마 친(親)중동정책에 대형 악재=이번 사태는 중동 '아랍의 봄'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온 미국 중동정책에 대해 그동안 제기돼온 회의론을 결정적으로 증폭시켰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이미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 미국이 이집트와 리비아에 대한 재정 및 군사지원을 중단해야 한다는 강경론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반정부시위 발발 이래 미국이 리비아에 제공한 경제적 지원은 총 2억달러 규모. 이집트에는 연간 13억달러의 군사지원과 별도로 부채경감을 위한 10억달러의 패키지 지원이 예정돼 있다.
일단 오바마 정권은 이번 사건이 9ㆍ11테러 11주년을 맞아 계획적으로 이뤄진 이슬람 무장단체의 테러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사건의 책임자를 엄단하겠다고 강조하는 한편 해당 국가와는 협력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12일 중동에서 벌어진 사건에 대해 "리비아 국민이나 정부가 아닌 소수의 야만적 그룹이 저지른 사건"이라며 미국은 리비아와의 협력을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미국 주요 인사들은 이번 사건의 배후와 관련, 테러조직 알카에다에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외교 문제 대선정국 새로운 화두로 급부상=중동 악재는 대선정국에도 적잖은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지지율에서 밀리기 시작한 밋 롬니 공화당 대통령 후보는 당장 오바마 대통령의 중동정책을 겨냥해 포문을 열었다. 롬니는 사건 직후 성명을 통해 정부의 첫 대응이 너무 늦었고 공격을 감행한 자들을 동정하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라면서 오바마 정부를 비난했다. 그의 러닝메이트인 폴 라이언도 정부의 유약함을 비난하며 그런 태도가 미국의 적을 기고만장하게 만들었다고 공세를 퍼부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이번 사태가 오히려 오바마 대통령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롬니는 오히려 "위기상황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한다"는 비난을 받는 실정이다. USA투데이는 "이번 사태는 그가 강한 리더십을 내보일 기회"라며 "통제 불가능한 상황으로 치닫지 않는 이상 이번 해외공관 공격과 그에 대한 대처로 오바마 대통령은 오히려 지지기반을 굳힐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랍권 반미정서 확대 우려=문제는 반이슬람 영화 '순진한 무슬림'과 리비아 및 이집트 사태가 촉발한 아랍권 내 반미 움직임이 어디까지 확산될 것이냐 하는 점이다. 이슬람을 모욕하는 한편의 영화가 도화선이 된 반미시위는 이미 리비아와 이집트뿐 아니라 튀니지 등 다른 이슬람 국가의 반미시위에 불을 붙인 상태다.
WSJ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현재 아르메니아ㆍ브룬디ㆍ쿠웨이트ㆍ수단ㆍ튀니지ㆍ잠비아ㆍ이집트 등 최소 7개국 미국 공관에서 반미시위에 대한 경고가 나오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이슬람 안식일인 금요일(14일)에 북아프리카ㆍ중동부터 인도네시아ㆍ말레이시아 등 아시아의 이슬람 국가로까지 반미시위가 확산될 것이라는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고 전했다. 걸프리서치센터의 지역안보 애널리스트인 무스타파 알라니는 "사태가 악화하면서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등 다른 무슬림 국가들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우려 속에 오바마 대통령은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과 통화해 아프간에서 반미 폭력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한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