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와 갱제/허두영 산업1부 차장대우(기자의 눈)

갑자기 돈이 궁할 때 돈을 빌려주면서 『술을 줄여라』, 『담배를 끊어라』고 조언하는 친구는 그래도 고맙다.그러나 돈을 빌려주면서 아침 몇시에 일어나고 몇시에 잠자리에 들며 하루 세끼 식단은 무엇으로 하고 부부관계는 1주일에 몇번만 하라고 꼬치꼬치 간섭하는 친구는 얄밉다. 아니 괘씸하기까지 하다. IMF는 5백50억달러를 지원하면서 기업의 재무구조를 건실하게 만들라는 권고 차원을 넘어 특소세와 교통세를 높이고 수입선 다변화와 자동차 형식승인제도를 폐지하라는 시시콜콜한 조건까지 내걸었다. 협상과정에서 IMF총재를 비롯한 관계자들은 거드름을 피우는 오만한 자세로 점령군 행세를 하며 우리의 자존심을 무자비하게 짓밟았다. 최근 국제사회에서 한국이 느끼는 참담한 감정이다. 마치 「이지메」나 「돌림빵」을 당하는 듯한 느낌이다. 이런 처지에 제일 먼저 회복해야 할 것은 국가의 자존심이다. 「한강의 기적」을 「한강의 치욕」으로 전락시킨 아픔을 두고두고 기억하는 자존심이다. 어쩔 수 없이 시시콜콜한 조건까지 받아들이는 정부를 보면서, 또 그 조건을 이행하겠다고 IMF 총재에게 밸도없이 약속하는 대선 후보들을 보면서 국민은 자존심 손상을 넘어 분노를 느낀다. 이 모두 「경제」를 「갱제」로 만들어놓은 대통령의 책임만은 아니다. 정작 필요한 시기에는 금융개혁법을 미루다가 이제서야 서두르고 대통령이 긴급명령권을 발동하지 않으면 탄핵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다가 물러서는 자칭 경제대통령후보들의 헛손질과 헛발질을 보면서 국민들은 실소를 금하지 못하고 있다. 「다스릴 경, 구제할 제.」 세상을 다스려 백성을 구제한다는 뜻의 경세제민에서 나온 말이 경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시 갱」자다. 정말 갱제가 필요한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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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두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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