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 사는 송모(48)씨는 최근 이사를 결심했다. 10년 가까이 공급면적 79㎡의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송씨는 중학생 딸과 초등학생 아들이 아침마다 1개뿐인 화장실 사용을 놓고 옥신각신하는 것을 보면서 좀 더 넓은 평형대로 옮겨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여윳돈이 많지 않아 좀처럼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하지만 집값이 계속 하락하면서 기회가 찾아왔다. 현재 송씨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시세는 3억5,000만~4억원선. 바로 옆 동의 109㎡는 4억5,000만~5억2,000만원으로 두 주택형 간 가격차는 1억원 정도다. 송씨는 "2~3년전까지만 해도 79㎡와 109㎡의 가격 차이가 1억5,000만원 가까이 났었는데 올 들어 상당히 좁혀졌다"면서 "모아둔 돈에다 약간의 대출을 얹어 좀 더 넓은 집으로 갈아타기를 시도해볼 참"이라고 말했다.
주택경기 침체와 인구구조 변화, 실수요자 중심의 시장 재편으로 중소형 아파트를 선호하는 현상이 심화되면서 중대형 아파트와의 가격 차가 갈수록 좁혀지고 있다. 중소형이 중대형 보다 매매가가 비싼 가격 역전 현상도 전방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송씨가 사는 아파트 단지의 3.3㎡당 매매가는 79㎡가 1,563만원으로, 1,470만원인 109㎡ 보다 93만원 가량 더 높다. 관악구의 경우 전용면적 85㎡ 이하(1,250만원)와 85㎡ 초과(1,265만원) 아파트의 3.3㎡당 평균 매매가격 차이는 15만원에 불과하다. 동작구는 중소형과 중대형이 모두 1,525만원으로 같아졌다. 가격 격차가 줄면서 중소형을 처분하고 중대형으로 갈아타기가 한결 쉬워진 상황이다.
과거처럼 집을 넓혀가려는 욕구가 줄면서 주택 다운사이징 바람이 거세지만 중소형 아파트 공급과잉으로 앞으로 중대형의 희소가치가 높아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서울의 경우 2010년 1만290가구이던 85㎡ 초과 중대형 아파트 공급물량이 지난해 7,141가구로 30% 가량 급감한데 이어 올 8월 현재 1,700여가구까지 쪼그라들었다.
임병철 부동산114 팀장은 "건설사들이 중대형 미분양을 방지하기 위해 중소형 보다 분양가를 낮추거나 다양한 할인 혜택을 제공하고 있어 신규 아파트의 중대형 평형도 관심을 가져볼 만 하다"면서 "분양 초기에 청약하기 보다는 추이를 봐가면서 가격 할인을 받거나 금융비용 부담을 줄이는 것도 갈아타기를 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서울 강북구 미아동에 위치한 '경남아너스빌'의 전용 84㎡와 114㎡의 3.3㎡당 평균 매매가는 각각 1,106만원과 1,047만원이다. 85㎡ 이하 중소형이 85㎡ 초과 중대형 보다 59만원이 더 비싸다. 동대문구 이문동 삼성래미안 59㎡ 역시 3.3㎡당 1,300만원으로 84㎡(1,294만원)와 114㎡(1,216만원) 보다 매매가가 높다. 동작구 노량진동의 '신동아리버파크'는 84㎡(1,303만원)가 114㎡(1,209만원) 보다 3.3㎡당 100만원 가량 비싸게 거래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주택경기 침체로 집값이 전반적으로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고가의 중대형 아파트가 중소형에 비해 상대적으로 큰 낙폭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중대형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는 이들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이지만 중소형에 살고 있는 주택수요자들에게는 보다 넓은 집으로 갈아탈 수 있는 호기가 될 수 있다.
◇공급없는 중대형 희소가치 높아질수도=올 들어 중소형 아파트와 중대형 아파트 가격 차이가 갈수록 좁혀지고 있다. 부동산리서치 전문업체 리얼투데이의 자료에 따르면 서울지역 아파트(재건축 제외) 중 중소형(전용 82.5~132㎡) 아파트와 대형(전용 132~181.5㎡미만) 아파트의 차액이 2007년 대비 1억758만원 줄었다. 올 6월 현재 서울 중소형 아파트의 평균 매매가는 4억8,573만원(3.3㎡당 1,494만원)으로 5년 전보다 1,415만원 오른 반면 대형 아파트는 9,342만원 내린 8억8,657만원(3.3㎡당 1,866만원)에 그쳐 갈아타기 비용은 4억84만원으로 감소했다.
1~2인가구가 늘면서 중소형 아파트 선호현상이 두드러지고 있지만 비싼 집값과 자녀 양육, 재테크 등의 이유로 독립하지 않고 부모와 동거하는 이른바 '캥거루족'도 늘고 있는 추세여서 중대형 아파트 수요는 상존한다. 최근 서울시가 발표한 서울 가족구조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서울에 살고 있는 30~49세 성인 중 48만5,000여명이 부모가 가구주인 집에서 함께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양지영 리얼투데이 팀장은 "소형아파트가 인기를 끌면서 건설사들이 트렌드를 ?아 소형 물량을 대거 쏟아내고 있다"면서 "2~3년 후에는 소형 아파트와 대형 아파트의 수급불균형으로 소형 물량에 비해 대형 물량의 희소가치가 높아지면서 가격이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중대형가격 추월한 중소형 속출= 중소형과 중대형 아파트 간 가격 격차가 줄어들면서 서울 시내 25개 자치구 중 두 면적대별 3.3㎡당 평균 매매가격 차이가 100만원 이내로 줄어든 곳도 7곳에 이른다.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114의 자료에 따르면 동작구는 중소형과 중대형의 평균 매매가격이 1,525만원으로 같고, 관악구(15만원), 강북구(25만원), 성북구(26만원), 동대문구.ㆍ서대문구(각 52만원), 금천구(61만원) 순으로 격차가 났다. 중소형과 중대형 간의 평균 매매가격 차이가 큰 곳은 역시 강남구로 765만원이었다. 양천구도 672만원의 큰 격차를 보였고 영등포구(555만원), 종로구(519만원)도 차이가 많이 났다. 서울 평균은 526만원이었다.
중소형 아파트의 3.3㎡당 매매가가 중대형 보다 높은 '역전 현상'도 잇따르고 있다. 이러한 단지들은 가격 차가 크게 줄어든 강북ㆍ관악ㆍ금천ㆍ동대문ㆍ동작ㆍ서대문ㆍ성북구에서 두드러진다.
금천구 독산동 신도브래뉴의 경우 전용 79㎡의 3.3㎡당 평균 매매가격은 1,233만원으로 116㎡의 1,131만원 보다 102만원 가량 높다. 서대문구 남가좌동 남가좌삼성은 59㎡(1,219만원), 84㎡(1,212만원), 114㎡(1,151만원) 순으로 매매가가 높다.
성북구도 상황이 비슷하다. 삼선동2가의 '삼선푸르지오'는 84㎡형은 3.3㎡당 1,500만원선에 거래되고 있는데 같은 아파트의 114㎡형은 1,313만원에 매매되고 있다. 이 때문에 가격 차이도 크게 좁혀졌다. 삼선푸르지오 84㎡는 4억4,000만~4억9,000만원에 시세가 형성돼 있고, 114㎡는 5억~5억5,000만원이다. 5,000만원 가량을 부담하면 30㎡ 넓은 집을 마련할 수 있는 셈이다.
임병철 부동산114 팀장은 "중대형 미분양 해소를 위해 정부가 취득세 감면 연장 등 세제혜택을 부여하는 등 거래 활성화를 추진하고 있는 만큼 지금이 저가 매입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면서 "지역적으로 잘 선별한다면 시장 회복 때 시세 차익도 기대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분양가 할인·무료 확장 등 파격 혜택 성행경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