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는 마이더스의 손인가' 드디어 인수합병(M&A)의 적기가 찾아왔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세계 각국의 경기회복이 점차 가시화되고 있는 데다 인수대상 기업들의 매물 가격은 아직 낮기 때문이다. 은행가이자 로스차일드 가문의 일원인 너대니얼 로스차일드 남작은 "길거리에 피가 흥건할 때가 진정 사들일 때다"라고 불황기의 M&A를 강조한 바 있다. 바클레이스 캐피털의 글로벌 M&A 국장인 폴 파커도 "역사는 밑바닥에서 과감히 사들인 기업의 편"이라고 지적했다. 보스턴 컨설팅그룹의 2001년 조사에 따르면 1985~2000년 사이 불황기에 M&A를 한 기업의 2년 후 주식가치는 8.3% 늘어난 반면, 호황기에 M&A를 한 기업은 6.2% 오히려 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단순히 '남들이 하니까 나도…'라는 생각으로 M&A에 뛰어들기는 겁나는 노릇이다. M&A가 실질적으로 기업에 득이 되는 경우보다 해가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의견이 만만치 않다. 미국 시장조사업체인 차이나마켓리서치 그룹(CMRG) 창설자 숀 레인은 미 경제 주간지 포브스에 기고한 칼럼을 통해 왜 M&A가 많은 경우 실패로 끝나는지를 분석했다. CMRG의 조사에 따르면 M&A를 시행한 기업 중 무려 70%가 M&A로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이질적인 조직간 융합은 까다롭다=M&A가 실패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인식 부족이다. 대부분의 CEO들은 합쳐서 나쁠 게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장부상으로는 그렇게 보일지 몰라도,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게 레인의 지적이다. 경영 위험성 및 구조적인 문제들 탓에 파국을 맞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순진한 생각만으로 M&A에 도전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구체적인 실패 원인은 뭘까. 첫째는 조직 문화간의 충돌이다. 지난해 메릴린치를 인수한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노련한 메릴린치 직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메릴린치 직원들이 빠져나간 이유는 BoA의 '보수적인' 분위기에 적응을 못 해서였다. 메릴린치는 전형적인 '아이비 리거'들이 득실거리며 과감한 위험 감수와 '돈이 최고'라는 사고방식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조직이었다. 게다가 메릴린치 직원들 사이에는 자신들이 BoA 직원들보다 뛰어나다는 일종의 우월감 같은 것도 있었다. 상대적으로 느려 터진 BoA에서 빠져나간 메릴린치 직원들은 자산운용사인 라자드 등으로 이직해 BoA를 위협하고 있다. 메릴린치 인수를 주도한 케네스 루이스 CEO 역시 얼마 전 회장직에서 물러나 예전만한 권력을 휘두르지 못하게 됐다. 사업에 얼마나 득실이 되느냐의 관점만으로 M&A를 시행하기에 앞서 두 조직이 얼마나 잘 맞물려 돌아갈 수 있을지 따져봐야 한다는 교훈을 주는 사례다. ◇시간과 자원을 투입할 가치는 있는가=애초에 M&A가 최선의 해답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이다. 지난 3월 중국 최대 음료업체인 후이위안(匯源) 인수에 실패한 코카콜라가 그랬다. 후이위안 인수를 통해 간접적으로 중국 시장에 진출하기보다는, 직접 뛰어드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었다는 지적이다. 중국 주스 시장이 눈부시게 성장하고 있지만 중국인들의 거부감을 알면서도 M&A를 선택한 코카콜라는 협상 실패로 귀중한 시간만 낭비했다. 그 시간에 자사의 주스 브랜드인 미닛메이드 광고에 힘썼더라면, 경쟁사인 펩시의 트로피카나 주스를 가뿐하게 누를 수 있었을 것이란 지적이다. M&A가 최상의 선택인지 사전에 숙고하지 않으면 귀중한 자원을 잘못된 곳에 쏟아버리는 꼴이 되는 것이다. M&A가 최선의 선택인 경우는, 단순히 덩치를 불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전략적 사고의 일환으로 채택될 때다. 지난 2000년대 초 질레트는 자사의 배터리 브랜드인 듀라셀이 중국 시장에서 점유율을 잃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원인을 분석한 결과, 중국인들이 비싼 배터리에 돈을 쓰기를 아까워한다는 점이 드러났다. 그렇다고 듀라셀 배터리의 가격을 내리자니 장기적으로 '싸구려 이미지'를 뒤집어쓸까 두려웠다. 그래서 나온 전략이 중국 배터리기업 인수였다. 2003년 질레트는 현지의 푸젠난핑난푸전지(福建南平南孚電池)를 인수했다. 저가 배터리는 난푸에 맡기고, 듀라셀은 프리미엄 브랜드로 성장시키겠다는 전략이었다. 이 같은 계산이 맞아 떨어져 질레트는 시장 점유율도 높였을 뿐만 아니라, 생산 및 유통 비용도 아낄 수 있었다. ◇보물찾기만큼 실패 확률 높다=도산한 기업들을 무분별하게 사들이는 무모한 자신감도 M&A 실패를 만드는 요소다. 영국의 카스 비즈니스스쿨은 지난 1984년부터 2008년까지 3,000건의 파산기업 M&A건을 살펴본 결과, M&A를 시행한 기업의 자기자본이익률(ROE)이 인수 후 3년간 이전보다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파산 기업의 잔해에서 보물을 찾아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설명해준다. M&A가 주가에 미치는 영향도 미미했다. 미국 기업들의 경우 M&A 후에 단기적으로 주가가 오르긴 했지만, 그나마 얼마 지나고 나면 원래 수준으로 돌아갔다. M&A를 성사시킨 영국 기업들의 주가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밖에도 숀 레인은 '서비스'를 파는 기업보다 '제품'을 파는 기업이 M&A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제품은 누가 만들고 파는지 중요치 않은 반면, 서비스를 구매하는 데는 특정 고객에 대한 기존 직원들의 '인적 관리'가 중요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메릴린치의 경우에도 금융상품 판매가 거의 브로커들의 인간관계를 중심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이들 직원이 떠나자 타격이 컸다. 어찌됐건 올해 M&A시장에 새로운 기회의 장이 펼쳐질 것이란 점은 분명하다. 16일(현지시간) 톰슨로이터와 JP모건은 보고서를 통해 올해 하반기부터 M&A 시장이 본격 회복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의 보스턴 컨설팅그룹도 "M&A시장의 침체가 이제 바닥을 쳤다"며 M&A를 검토해 온 기업들이 신속히 행동에 나설 것을 촉구하고 있다. 전문가들도 지난해부터 '불황기라 인수 가격이 싸다', '불황일수록 과감하게 투자해야 한다'며 M&A를 부추겨 왔다. 기업들도 마음이 급하다. 세제(洗劑)로 유명한 클로락스가 지난해 천연화장품 브랜드인 버츠비(Burt's Bees)를 인수, 사업 확장의 기회로 삼았다는 성공사례 등도 최고경영자(CEO)들을 초조하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격언을 되새겨볼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