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12월30일] <1281> 극장의 참사


1903년 12월30일 미국 시카고 이쿼로이 극장. 뮤지컬 ‘푸른 수염의 사나이’ 2막이 시작될 무렵 무대 옆 커튼에 불이 붙었다. 극장은 공포로 뒤덮였다. 이때가 오후3시15분. 관객들은 비상구를 향해 뛰쳐나갔다. 오케스트라가 관객을 안심시키기 위해 애써 연주를 시작한 순간 불길이 무대장치를 태우며 굉음과 함께 무너져내렸다. 전기도 모두 나간 극장 안에서 화마가 악마의 혀처럼 2층 꼭대기 관객들을 집어삼켰다. 불길이 미치지 않은 1층에서도 대부분의 비상구가 열리지 않아 관객들이 깔려 죽는 아비규환의 사태가 벌어졌다. 극장 측이 공짜손님을 방지한다며 막아놓은 탓이다. 비상구를 부수고 탈출한 사람들은 건물 밖으로 뛰어내렸지만 겨울의 차가운 길바닥에 부딪쳐 목숨을 잃었다. 불길은 어렵지 않게 잡혔다. 화재발생 직후 출동해 15분 만에 진화에 성공한 소방대가 극장 안을 살펴봤을 때 객석의 시트도 그슬린 정도였다. 경미한 재산피해와 달리 인명피해는 상상을 초월했다. 불과 15분 동안 사망자가 575명. 대부분 연기에 질식하거나 깔려죽었다. 병원에 후송된 부상자 27명도 목숨을 잃어 모두 602명의 인명이 희생됐다. 방학을 맞아 극장을 찾은 어린 학생들이 가장 많이 희생됐다. 비상구 표시등 부착 의무화 등 극장 소방법이 마련된 것도 이때부터다. 짧은 시간에 최다 인원의 목숨을 앗아간 최악의 화재사건으로 꼽히는 이쿼로이 극장 화재는 세월 속에 잊혀져가고 있지만 투자론에는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월가의 투자전략가 로버트 맨셜은 주가가 폭락할 때 공포에 휩싸여 투매하는 투자자를 불길 속의 극장에서 무질서하게 비상구를 찾는 경우에 비유한다. 비이성적 판단과 행동이 투자자 자신을 ‘비상출구 없는 극장’ 안에 가두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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