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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서 빠르게 스쳐지나가는 풍경의 잔상을 그리는 최경화 작가의 ‘Residue’ 展이 열린다. 잔상은 이미 그 자리에 있다가 없어진 상이지만, 눈 속에 남아서 형상을 이루기 때문에 감각적으로는 실제로 보이는 것이고 눈동자의 움직임에 따라 같이 움직이고 눈길을 집중시킬 수도 있는 실체이다. 작가는 눈의 안쪽에 남겨진 형상을 그리는 것으로 시감각에 온전히 포착되지 못하고 남겨진 것들을 기록하고자 하며 눈앞의 대상이 감각 속에서 구성되는 과정을 기록하고자 한다.
태고적으로 시간을 되돌려본다면 사람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건 자신이 보고 들었던 무언가를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서였을 수도 있다. 수천 년의 엄청난 시간이 흘렀고, 현대의 미술은 끝없이 많은 변화와 함께 보다 더 새로워지고 있다. 하지만 이 오래된 이유는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들 안에서는 여전히 고스란히 살아 숨 쉬고 있다. 그 기록에 자신만의 색과 생명을 부여하는 것, 그리고 그 내용(context)의 선택은 창작자의 고유 권한이다. 그것이 작품이 특별할 수 있는 이유일 것이다. 뭔가를 의식하고 바라보면, 짧은 순간이라도 보았던 형상이 눈 안에 남아 어른거리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눈을 깜박이면 없어지지만 그래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 우리가 잔상(殘像)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작가는 여기서 구현에 대한 힌트를 얻고 작업을 시작했다. 멈출 수도 없고 멈춰 세울 수도 없는 짧은 시선의 교차 뒤에 남는 잔상은 대상을 그대로 담아내는 사진처럼 정확한 것도 아니고, 그림처럼 확고한 메시지를 전하는 것도 아닌 중의적 존재이자 개념이다. 어찌 보면 진행 중의 흔적에 불과하지만 그러한 어느 한 곳에 속하지 않은 특질 덕분에 더욱 소재로서의 주목을 끈 것이 아닐까 싶다. 어딘지 불안한 느낌의 선은 그러나 화려하거나 선명한 색으로 빛을 내며 군집하고, 이렇게 모인 기억의 잔여들은 헨젤과 그레텔의 빵부스러기처럼 흔적을 남기며 캔버스 속 어딘가로 관람자를 인도하는 것 같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작가의 시선을 붙들었던 풍경의 잔상과 그것을 바라보던 시선의 시작과 끝, 그 틈새로 엿보이는 불완전한 움직임까지 캔버스에 옮기는 작업에 집중한 것이다. 그 소재와 표현기법의 무게는 가벼운 것이었지만 그것들이 전부 축적된 결과물은 무수한 시공간과 시선, 심지어 상념까지도 포함하며 모종의 생명체로 변이하며 숨쉬기 시작한다. 쉽게 얕볼 수 없는 무게감이 시간차로 중첩되며 비중을 갖기 시작하게 된 셈이다. 이는 또한 일상의 어떤 하찮은 것이든 그것에 작업으로서의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한 순간 개념이 되어 캔버스를 차지하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이번
최경화 ‘Residue’ 展은 2013. 12. 18 (수) ~ 12. 27 (금) 10일간 삼청로에 위치한 갤러리 도스에서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