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외환위기 시절 '코리안 특급' 박찬호(40ㆍ당시 LA 다저스)의 호투는 실의에 빠진 국민에게 전하는 위로와 희망이었다. 십수년 전 박찬호가 그랬던 것처럼 '코리안 몬스터' 류현진(26ㆍLA 다저스)도 미국 메이저리그 데뷔전에서 희망을 던졌다. 거의 매 이닝 찾아오는 위기를 뚝심으로 견뎌내며 미국에서의 성공 시대를 예고했다.
류현진은 3일(이하 한국시간) 로스앤젤레스의 다저스타디움에서 벌어진 지난해 월드시리즈 우승팀 샌프란시스코와의 홈경기(0대3 다저스 패)에 선발 등판해 패전 투수가 됐다. 하지만 5,000여명의 교민이 경기장을 찾은 가운데 '퀄리티 스타트(선발 6이닝 이상 투구 자책점 3점 이하)'를 달성, 다저스가 그에게 6년간 3,600만달러(약 390억원)를 지불하기로 한 이유를 증명해 보였다.
이날 서울역과 서울고속버스터미널 등 인파가 몰리는 곳은 오전부터 TV 앞이 복잡했다. 거리에는 휴대폰을 통해 DMBㆍ인터넷 중계로 류현진 경기를 보는 사람들이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박찬호를 응원하던 그때 그대로였다.
◇3무(無) 없는 데뷔전=류현진의 이날 성적은 6과3분의1이닝 투구에 10피안타 5탈삼진 3실점(1자책점). 7회 실점은 유격수 실책에 따른 것이어서 투수가 책임져야 하는 실점인 자책점은 단 1점이었다.
류현진은 80개의 공 가운데 55개를 스트라이크로 꽂았는데 6회만 빼고 매 이닝 안타를 내주면서도 2루타 이상의 장타는 한 개도 없었고 볼넷과 몸에 맞는 공도 없었다. 오뚝이처럼 위기관리가 잘됐고 공격적인 투구로 타자를 상대했다는 얘기다.
1회 1사 1ㆍ2루에서 병살타를 유도한 류현진은 2회 무사 1ㆍ2루에서도 병살타와 삼진으로 무실점을 이어갔다. 4회 1사 뒤 연속 3안타로 첫 실점하며 크게 흔들리는 듯했지만 계속된 1사 1ㆍ2루에서 헛스윙 삼진과 2루수 땅볼로 불을 껐다. 이날 이끌어낸 병살타만 3개였다. 7회 유격수 실책과 안타로 1사 2ㆍ3루에 주자를 남겨두고 홈 팬들의 기립박수를 받으며 강판했다. 이후 로날드 벨리사리오가 나왔지만 유격수의 홈 송구 실책으로 주자가 전부 홈을 밟으면서 실점은 3점으로 늘었다.
◇높은 공 줄이고 구속 높여야=긴장한 듯 상기된 표정으로 마운드에 오른 류현진은 이날 공이 전반적으로 높거나 가운데로 몰렸다. 장타가 나오지 않아 다행이었지만 동료들의 호수비가 없었다면 아찔할 순간도 있었다.
이날 50개를 던진 직구의 평균 구속은 시속 143.5㎞. 최고 구속(148㎞)도 150㎞를 넘지 않았다. 변화구인 체인지업을 '필살기'로 쓰는 류현진이지만 더 빠른 직구를 던져야 체인지업의 효과도 커진다. 지난해 월드시리즈 우승팀을 상대로 무난한 데뷔전을 치른 류현진은 8일 오전5시10분 피츠버그와의 홈경기에서 첫 승에 재도전한다.